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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종국.
그 둘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진 동네친구들이었다.
공교롭게도 한 명은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로 오래 지내다가 사망했고,
또 한 명은 이른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약 3년 간을 타인들의 손에 의지하며 살다가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어쨌거나, 친밀도야 어떻든 그들과 함께 초등학교부터 입학해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말 한마디 할 수 없고 누가 누군지도 못 알아보는 상태로 몇 년간을 지내다 사라진 것은 동네 친구들에게도 큰 상처를 줬다.
처음에는 거의 매일을 병원에 찾아가다가, 나중에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일방적인 병문안도 시들해지고, 무엇보다 그 부모님들이 아들의 멀쩡한 친구들을 볼 때마다 통곡하시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서 결국 사망 후 장례식에서야 모두 모였던 기억이 있었다.
원래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서로에게 뜸해진 게 현실이긴 하지만, 결국 모이면 과거 다섯 명이 모여서 하던 일들을 안줏거리 삼아 이야기하게 되는 흐름.
그리고 그 끝맛은 늘 쓰디썼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레 그들은 과거를 들추는 일을 가능한 덜 하게 되었던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각자 아이를 낳고, 아이가 돌잔치를 하게 되면 한 번 만나고, 부모님의 팔순잔치를 하게 되면 또 한 번 모이고, 그 이후로는 처음으로 이렇게 과거의 동네에서 모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지금 모인 술집도 꽤 퇴락한, 그들의 청춘시절이 녹아든 그런 가게였다.
당시에 젊던 주인아주머니도 할머니가 되었고 그곳에 모여 앉은 셋도 모두 중늙은이로 변했다.
또다시 떠나간 친구들을 입에 올려 서먹한 분위기를 만든 창완이 다시 입을 열었다.
- 늬들. 솔직히 말해봐. 성철이나 종국이. 걔들 성격 알잖아.
엄청 까탈스럽고 깔끔 떨던 애들.
학교 때도 자기 도시락반찬에 누가 젓가락 들이대면 밥도 안 먹을 정도로 말야.
솔직히 다 같이 목욕탕 갈 때도 걔들은 쪽팔리다며 안 갔었던 거 기억나?
- 그래. 그러긴 했지. 근데 그게 뭐.
대호의 무뚝뚝한 대답에 창완은 혀를 찼다.
- 그러니까. 그 녀석들이 거의 3년간을 기저귀 차고 똥오줌을 다 남들이 받아내고 하는 걸 좋아했겠냐고.
- 글쎄? 당연히 질색했겠지만 알 수가 있나? 거의 의식이 없거나 의식이 돌아와도 아무 표현도 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종선이 대답하자 창완은 다시 또 끌끌 노인처럼 혀를 찬다.
- 내 말은. 인간의 존엄성은 개인 스스로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 이 말이야.
약속이라도 한 듯 대호와 종선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다시 창완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고,
또다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존엄성이라.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게다가 저 창완이라는 녀석은 전공이 화학이었다.
철저하게 이과적인 녀석이었고, 그가 근무하던 직장도 제약회사의 제조공장 쪽이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인간의 존엄성 이라니.
다시 창완이 입을 열었다.
- 걔들이 표현을 할 수 없어서 그렇지. 만약 정신만은 멀쩡한 상태였었다면 그런 생지옥이 없었을 거다.
그렇지 않냐? 자기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하는 치부들을 다 드러내고, 어린 아기들처럼 호스로 투입되는 죽을 먹어야 하고, 똥오줌 못 가리고 등짝에서 욕창이 생겨 썩는 냄새가 날 지경인데 그렇게 살고 싶었겠느냐고.
단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지 않았겠냐.
말은 옳은 말이었다.
정작, 종선 자신의 어머니도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서 어린 아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살지 않나.
그토록 자존심 세고 세상에 제일가는 고집으로 뭉쳐서 살던 분이.
다른 노인들처럼 못쓰게 된 유모차라도 밀며 걷는 건 절대 싫어하셔서 끝까지 지팡이를 고집하시다가 다리까지 골절되었던 그 꼿꼿한 어머니.
그랬던 어머니가 마치 드라마에 등장하는 치매 노인들처럼, 아니 어찌 보면 그보다도 더 과장될 정도로 아들인 자기 자신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상태로 요양원에서 지내는 걸 보면,
어머니께서 과연 당신께서 이렇게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으리라는 걸 안다.
친구들만 나이를 먹는 건 아니라서, 결국 대호의 부모님 중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말고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와 엇비슷한, 어쩌면 더 나쁜 상태로 요양병원 침대를 못 벗어난 지 2년이 넘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인과들이 어쩌면 부랄친구 이자 동네친구 이기도 한 셋이 선뜻 모이지 못했던 이유 일수도 있었다.
과거를 회상하면 너무 일찍 가버린 친구들에 대한 추억.
현재를 이야기하자니 정말 현실적으로 부모님의 상태들에 대한, 좋아질 수 없고 앞으로가 더 걱정이 되는 현실들을 서로가 이야기한다는 것이 또 다른 괴로움이 되고.
이제 곧 노인의 나이가 될 자신들의 미래도 그다지 긍정적으로 생각되지 않는 그 모든 것들.
그 모든 이유들은 그들이 모여서 ‘좋은 이야기’ ‘발전적인 이야기’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만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 근데. 그래서 뭘 어쩌라고.
종선이 불퉁맞은 표정으로 창완에게 쏘아붙이듯 말을 꺼낸 것은 그 모든 상황들이 서로 이야기만 안 했을 뿐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너, 넌. 보험회사 다니잖아. 대호는 변호사 고.
뜬금없는 직업 타령에 종선과 대호는 어리둥절 해졌다.
그들의 직업과, 이 우중충하게 비가 오는 늦밤과, 인간의 존엄성 간에 무슨 인과관계가 있다는 건지 아니면 창완 특유의 술에 취하면 횡설수설하는 버릇이 도진 것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 내가 생각해 봤어. 우리나라 인구통계가 노인위주 사회로 가고 있다고 하잖아.
앞으로의 미래는 노인들이 가득한 세상이 될 거라고.
그런데 너는 보험회사에 있고 대호는 변호사니까, 이걸로 우리 사업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
두서없는 창완의 눈동자는 마치 새로운 물질을 발견한 과학자의 광기처럼 번들거렸다.
그 앞뒤 맥락 없는 창완의 열기에 전염이라도 된 듯 대호와 종선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 사업? 사업 이라니? 갑자기?
그렇게 변두리의 쇠락해 가는 선술집에서 돼지 껍데기가 다 타서 새카맣게 변할 정도의 시간에,
창완이 시작한 사업설명회는 듣고 있던 두 사람에게는 경악 혹은 전율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대략적인 사업의 내용은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