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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보험 상담을 접수하셔서 전화드렸습니다~ 박종석 선생님 맞으시죠?
휴대전화 너머로 또랑또랑하면서도 은근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공연히, 어차피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지만 고개를 휘휘 저어 확인하는 건 거의 습관이다.
- 네. 맞습니다.
- 간단한 신분확인을 위해서 몇 가지 여쭤보려고 합니다. 괜찮으실까요?
- 네. 괜찮아요.
- 현재 보험 신청에 대해서 가족분들과 혹시 상의를 하셨을까요?
- 음... 상의하진 않았지만 딱히 상의 ‘할만한’ 가족은 없습니다.
- 네. 그러셨군요. 그러시면 요청하신 보험은 일반적인 생명보험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 인지하고 계실까요?
종석은 잠시 탁구공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던 대화를 멈추곤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일반 생명보험과 다른 점이라.
보통의 생명보험들과 분명히 다른 성격의 보험이긴 하지만, 엄밀히 생각해 보면 보통의 생명보험이라는 것들이 무엇을 위해 가입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리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라고.
아파트의 먼지가 잔뜩 낀 창문 밖으로 하염없이 흘러가는 구름이 보였다.
먼데 보이는 이름 모를 산등성이는 푸르디푸르게 보였고.
- 네. 인지하고 있어요.
한참은 아니지만, 잠시간의 침묵으로 인하여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은 조금 당황할 법도 한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차분한 저음의 목소리가 이내 응답한다.
- 네. 그러시면 곧 메시지로 보내드리는 링크에 들어가셔서 예. 아니오 체크를 해 주시고 개인정보보호에서 본인 인증을 해주시면 가입이 완료됩니다.
하시다가 어려운 점 있으시면 전화드린 번호로 전화 주시면 되시고요, 보험증권은 이메일과 등록 주소지로 각각 발송됩니다. 안락 생명보험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극히 사무적인 명랑한 톤의 인사말은 어쩐지 다정하기보다는 ‘선고’를 내리는 법정 재판관의 음성처럼 무게감이 있고 엄숙하게 들려왔다.
이제, 준비되었다.
라고 종석은 생각했다.
오랜 시간 고민하던 보험가입이 끝나고 나니 뭔가 홀가분하기보다는 미뤄놓은 숙제를 마친 이런 학생 같았다.
종석은 소파에서 일어나 먼지가 보얗게 앉은 발코니 창문으로 다가섰다.
처음 아파트에 이사 왔었을 때, 언젠가는 한 번쯤은 올라가 보리라 무심코 다짐하던 먼 곳의 푸른 산은 정작 아직도 이름조차 모르는 산이었다.
이사 왔을 때부터 왜 하필 그 이름도 모를 산에 오르리라 생각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습관처럼 늘 발코니에 서면 그 산이 멀리 보였고,
산은 때로는 푸르게 때로는 검은색으로 때때로 하얀 눈이 가득 쌓인 모습이었지만 지극히 산세가 평범하고 굳이 등산객들이 찾지는 않을 것처럼 보이는 산이었는데.
그런 산인데도 수년간 발코니에 서서 창 밖을 바라볼 때마다 한 번은 올라야지, 다짐하곤 이내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일이 반복되었었다.
그 산은 마치 종석의 지난 삶과도 같았다.
평범하고,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누가 잘 찾지도 않으며 때론 제법 울창했고 때로는 흰 눈을 뒤집어쓰곤 하던 그의 삶.
- 부장님. 제가 이번에 올려드린 기획안 검토 하셨습니까?
- 어. 김 차장. 검토는 하고 있는데.... 이거 참. 너무 파격적인 거 아닐까?
- 좀 그렇긴 한데요, 기획서에 첨부된 통계자료들을 보시면 이게 필요한 사람들은 꽤 될 것 같지 않습니까? 일단, 고객층 확보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 알지.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해. 하지만 이런 보험상품이 나온다면 아무래도 그... 법적인 부분이라던가 종교단체라던가 인권협회 뭐 이런 작자들이 엄청 시비를 걸 거 같아서 말이야.
- 물론 그야 그렇죠. 하지만, 저는 이게 요즘 세대에는 반드시 필요한 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보험으로 인한 수익률도 어느 정도 명확하지 않습니까?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다른 상품들에 비해서 안정적인 수익률이 보장된단 말이지요.
열띤 김 차장의 설명에 이 부장은 희끗희끗해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 일단 알겠네. 내가 좀 더 검토해 본 이후에 본부장께 결재를 올리도록 하지.
- 네. 감사합니다!
김 차장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이 부장은 다시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일평생 보험회사에서 현재의 자리까지 올라왔지만, 별의별 꼴을 다 봤다고 스스로 자부하지만, 김 차장이 올린 것과 같은 보험 상품은 정말 생각지도 못하던 것이다.
습관처럼 더부룩한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로 돌아가는 김 차장을 보면서 이 부장은 생각이 들었다.
김 차장 저 놈은 천사 거나 혹은 지독한 악마 일거라고.
보험이라는 것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국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평생을 유지하는 가입자는 드물지만, 이중삼중으로 이런저런 엇비슷한 생명보험이나 상해보험 정도는 누구라도 갖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에 대한 보험도 있을 정도인데.
대개의 보험상품은 늘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여 ‘최선의 대비’라고 알려져 있고 그렇게 홍보를 하지만 대체로는 그 반대다.
거의 일어날 확률들이 극히 드문 질병이나 사건 사고에 대해 보험을 만들고,
실제로는 지급조건이 대학입시만큼이나 까다로운 제외항목을 얼마나 요령 있게 잘 만드느냐에 따라 보험사의 수익이 결정된다.
그렇게 하니 전국 모든 도시의 가장 높고 웅장한 건물들이 다 생명보험사 건물 아닌가.
대개의 가입자들은 앞으로 예측이 불가능할 어떤 질병과 사건 사고를 담보로, 매월 보험사에 돈을 내곤 그것으로 만에 하나 어떤 사고가 생겼을 때 보험사에서 적극적으로 보장해 주리라 기대하며 보험청약서에 서명을 한다.
하지만 시간의 힘이라는 것은 대단해서,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영부영 보험금이 아깝게 생각되고 정작 본인에게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 크게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중도 해지를 하곤 한다.
그러다가 또 주변에서 일어나는 천재지변급 사건을 보면 다시 불안해져 새로운 보험에 가입을 하곤 하는 것이다.
정작 보험지급사유가 발생하면, 보험사에서는 어떻게든 보장 보험금을 줄이기 위해 현미경으로 조사하듯 낱낱이 보험지급거부사유를 찾아내려 애쓰고 마지못해 보험금을 지급하곤 하는 것이다.
물론 보험약관의 취약점들을 열심히 연구하여 ‘사기’급 사건을 만들어내는 작자들도 없진 않지만,
대개의 보험사들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담보 잡힌 순진한 고객들의 푼돈으로 거대한 성을 쌓아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