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생명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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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창완은 묵묵히 침구를 향해 낮은 포복을 하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연로해서 이제 걷지도 못하는 어머니의 필사적인 포복을 그가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창완이 불효자 여서가 아니다.

이제 아흔이 넘은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부터 척추관협착으로 거의 걷지를 못했다.

걷지를 못하니 어머니의 하체는 마른 볏단처럼 점점 근육이 메말랐고, 그 때문에 가벼운 거동이 어렵다.

그러니 화장실에 갈 때도 거의 기어가서 문틀을 잡고 위태위태 일어나야 하고, 역순으로 거실 바닥에 깔린 침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가끔 아들도 잘 못 알아보는 어머니지만 아들이 부축하거나 거들어주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게 대체 어떤 의지의 발현일지는 몰라도, 어머니는 한사코 아들의 도움을 거부하고 늘 위태하고도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차라리 기어 다녔다.

창완은 생각했다,

어쩌면, 협착증 초기에도 동네의 또래 할머니들은 다 앞에 세우고 기대서 다니시는 못쓰는 유모차 같은 것을 절대 거부하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손등의 핏줄이 불쑥 터져 나올 정도로 힘을 들이고도 꿋꿋하게 지팡이를 짚었다.

어쩌면 그게 어머니의 질곡 많은 삶에서 유일한 자존심일지도 몰랐다.

다른 노인들은 휠체어를 타고도 여기저기 가족여행도 다니시던데.

물론 창완도 자기 편의점 하나 운영하기에도 늘 잠이 부족하고 벅차긴 했지만,

어머니에게 휠체어란 당신 스스로 정신줄을 놓은 상태가 아니면 절대 거부할 ‘무엇’이었다.

창완은 그게 타인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자식에게 절대 짐이 안되리라는 어머니의 유전자 어딘가에 지독하게 각인된 ‘무엇’ 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힘겨운 상황에서 조차 아들의 도움도 거부하고 땀을 흘려가며 포복하는 어머니의 고집은 흔히 말하는 ‘곤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얇은 잠옷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려 도착한, 화장실에서 불과 2미터 남짓한 거리의 침구에 도착한 어머니는 가쁜 숨을 쉬는 그 와중에도 침구의 가장자리에 살짝 구겨진 요를 쪼글쪼글한 손으로 연신 문질러서 주름을 펴고 계셨다.

창완은 자신도 모르게 후 한숨을 쉬었다.

곧, 누워서 뒤척이면 다시 구겨질 이불을 애써 다시 평평하고 반듯하게 펴는 어머니의 결벽.

당신의 결벽한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병에 걸려 고군분투하는 어머니의 삶이 애처롭다.


창완은 생각했다.

이게 과연, 정말로 어머니가 원하는 삶일까.

자신이 중년을 넘어선 나이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힘겨운 노년이 자신의 노년과 겹쳐 보였다.

그런 이유로 창완이 동창들을 만나 제안한 것이 안락생명보험이었다.

인간이 최소한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그 이후 삶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혹은 잘 선택이 되었든 잘못 선택이 되었듯 자기 의지로 살아온 것인데.

죽을 때도 자신의 선택은 상관없이 태어났을 당시처럼 무력하게 흐름에 이끌린다는 것.

그것은 최소한의 ‘존엄성’도 지키지 못하고 가게 되는 것 아닌가.

창완이 비 내리는 선술집에서 두 명의 동네친구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을 때만 해도 당시에는 그것이 현실화가 되리라는 생각을 깊이 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보험사에 다니는 종선에게서 연락이 와서 새로운 사업부를 구성하게 되었고,

자신에게 함께 일을 하자는 언질이 있자 한편 기뻤고 – 현재 무직자 이므로 – 그곳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두려움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인생에서 대부분을 ‘선택’ 한다는 것은 실은 ‘주어진 상황’에 맞게 제한된 선택을 하는 것이라는 것도 엄연히 사실이니까.

물론 아이디어를 낸 건 자신이지만, 과연 보험사에 가서 할 수 있는 자신의 ‘일’은 뭘까.


- 그나마 네가 화학 전공자 아니냐. 제약회사 근무 경력도 십 년 넘게 있고. 그러니까 네가 그 일을 맡아야지.

장마철이라 그런 건지 방송에서 떠드는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비가 잦아진 저녁 무렵에 세 명의 음모꾼들이 다시 그 이전의 선술집에 모였다.

먼저 와 있던 종선과 대호는 이미 술이 한순배 돌았는지 약간 거나한 분위기였는데,

자연스럽게 합석한 창완에게 거푸 소주잔을 권하면서 역시나 자연스럽게 종선의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락생명보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거기에 또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업부에서 창완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종선이 말을 꺼낸 것이다.

아이디어를 자신이 내긴 했지만, 창완은 술이 번쩍 깰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 그거야 지난 일이고. 제약회사 연구원 출신들이 넘치도록 많을 텐데 굳이 왜 나를....


창완의 심각해진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종선은 휴... 하고 한숨을 쉬며 자신의 잔에 남겨진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얼굴에는 한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 야, 창완아. 나는 보험사 안에 있는 사람이니 당연히 보험에 관련된 업무를 맡는 게 맞을 거고, 대호야 직업이 변호사이니 법적 문제를 검토하고 또.. 뭐냐 보험계약 때 공증 역할도 하고 그러면 되는데,

넌 뭘 할 수 있는데? 내가 말한 보직 말고 다른 거 뭐를? 지금 나이에 그 정도 책임자급 되기 힘들어.

네 말대로 전공도 하고 실무도 했었지만 오래 쉬었, 아니 전혀 무관한 편의점을 했었잖아. 안 그래?


말문이 막힌 창완은 핼쑥한 표정으로 도움을 청하듯 대호를 쳐다봤지만, 대호는 이미 종선과 이야기를 나눈 듯 종선과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쳤다.

창완에게 제안된 보험사의 자리는 굳이 표현한다면 ‘보험 관리 실행부서 책임자’였다.

보험을 영업하는 역할 부서장은 종선. 계약 단계에서 법리문제와 공증문제를 다룰 책임부서장은 대호. 그리고 자신은 보험이 실행 단계에 들어갈 때 필요한 제약팀과 실행팀을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직함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좀 거칠게 표현한다면 ‘안락사 조력팀’의 팀장인 것이다.

텍스트 적인 어감이 어쨌건 간에 자신이 하는 일은 최종적으로 ‘자살’을 승인하고 조력하는 일인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낸 아이디어 이긴 했어도, 타인의 생명을 마감하는 일의 책임자 자리는 너무도 무거운 일이다.

자신이 제약회사의 연구원이었고, 화학 전공자로서 사실 사람을 ‘살해하는’ 약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약을 연구하여 찾아내는 것은 정말 어렵고도 힘겨운 일이지만, 사람을 ‘죽이는’ 약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결과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약은 그에 따른 임상실험이나 예상되는 부작용이나 용량의 문제 등등 고려할 사항들이 너무나도 많고, 또 투약을 받은 사람들 개개인에 따른 클레임이 수반되는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물론 ‘안락사’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대로 최대한 ‘안락’하게 보내는 것이 목적이지만 당사자가 보이게 안 보이게 겪을 고통은 사실 알 수 없다.

그리고 조력자살이 실패하지 않는 한 그것으로 클레임을 걸 당사자도 없다.

때문에 자신이 맡은 일은 기술적인 어려움보다는 감정적인 어려움이 큰 일이다.

법정에서 검사 나 판사가 피의자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일은 좀 다른 감정일 거다.

구형 당사자들이 사형집행장에 동행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법정 진술과 판결문에 등장하는 텍스트들은 어려운 법률용어와 다듬어진 문맥 때문에 자못 엄숙하고, 이른바 ‘정의’를 실현한다는 숭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정작 현장에서 벌어지는 인간에 의한 인간 생명의 말살 행위가 그리 숭고하지도 않다는 것은 현장에 입회한 사람들 외에는 먼 나라 일 같은 것이다.


그들이 기획하고 있는 안락생명보험은 가입자 스스로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식으로 조력 자살을 돕는다고 되어있긴 해도, 그 또한 사형집행인과 크게 다른 일은 아니다.

적어도 물리적인 현상으로는 그러하다.

사업적으로도 사업성 좋고, 개인적으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훌륭하고, 사회적으로도 잉여비용을 들여가며 원치도 않는 당사자의 연명치료를 도울 필요와 비용이 줄어드니 나쁠 게 없긴 하다.

그러나 그 본질이 어떻든 현장에서 사람을 기술적으로 ‘보내야 하는 사람’으로서 갖는 부담감과 죄책감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창완이 연거푸 소주잔을 들이켜자 종선과 대호는 침묵했다.

그들도 창완에게 제안한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려면 누군가는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문제 때문에 생명보험 본사에서 굳이 사업부 분리라는 비효율적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고, 어찌 보면 퇴물 직원에 한물 간 변호사, 현 무직자를 책임자의 자리에 앉히는 기발한 인사관리를 한 것 일거라는 것쯤은 깨달을 만큼 그들은 나이가 들었다.

- 알겠다. 내가 하면 될 거 아니냐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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