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생명보험

6

by 능선오름

6.


창완은 첫 출근을 했다.

제약회사를 그만둔 지가 이십여 년 전.

그 이후 편의점을 운영했던 것이 약 칠 년.

그다음 무직자로 삼 년정도를 지냈으니 ‘출근’이라는 개념은 생소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그나마 의지가 되는 것은 그 출근 장소에 자신의 부랄친구들인 종선과 대호가 함께 있다는 것뿐, 나머지는 모두 처음 겪는 생소한 장소이니 불안한 것이 당연했다.

종로나 명동거리에서 청춘 시절을 보낸 그에게 ‘강남’이라는 곳은 생소할 뿐 아니라 매우 불편한 도시 다.

지금은 구도심으로 불리는 종로나 을지로, 명동거리는 좁은 골목으로 비정형적 연결점이 가득한 길이다.

한마디로 그곳에 자주 가서 익숙했던 사람들 조차 이 골목 저 골목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도시골목이 산재하였으며,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이방인이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거닐기에 최적인 것이다.

그러나 개발과 함께 계획적으로 조성된 강남의 거리는 넓고 개방적이다.

직선으로 쭉쭉 뻗은 도로와, 교차로마다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이정표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찾기도 편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넓은 시야를 제공하기에 오히려 불안증이 오기도 하는 것이다.

좌우로 협곡처럼 늘어선 고층건물들 사이의 길게 뻗은 도로를 거르면 현기증이 몰려올 정도로 공간적인 괴리감과, 넘쳐나는 사람들 사이를 거슬러 걷다 보면 수많은 대중 속 소외감을 느낄 정도로 고독하다.

창완의 출근 첫날 회사에 대한 인상도 그랬다.

강남 중심부에 자리 잡은 거대한 본사의 파사드는 창완에게 위압감을 주었고, 이리저리 물어서 본사의 자회사 격인 ‘안락생명보험’을 찾았을 때는 거대한 본사의 그늘 뒤에 숨은 조그만, 이른바 땅콩빌딩이라 불리는 건물이 보여서 한편 안도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게 자신들-부랄친구들- 이 낸 아이디어의 종점으로 보여서 일편 씁쓸했다.


거대한 생명보험회사 뒤 건물 그늘에 가려진 4층짜리 건물은 아담했다.

그래도 강남은 강남인지라, 비교적 깔끔해 보이는 회색 금속판으로 둘러싸인 건물은 뭔가 현대적인 디자인이 깃들어있었고 1층의 출입문에는 조금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출입카드를 터치해야 들어갈 수 있는 차단기가 설치되어 그곳을 지키는 무표정한 , 단단한 체구의 제복을 입은 보안요원에게 신분증을 제출하자 보안요원이 지극히 사무적인 고저장단 없는 음성으로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하며 어딘가로 인터폰을 들고 통화하더니 창완에게 직원용 패스카드를 내밀며 싹싹하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 출근 환영합니다. 부장님.


‘부장’이라. 낯선 칭호. 그리고 낯선 차가운 환대.

창완은 저도 모르게 쭈뼛대며 종선이 말했던 4층 임원실로 오르는 승강기 스위치를 눌렀다.

사무실은 비교적 환했다.

일반적인 사무실과 달리 따스한 느낌을 주는 조명들과, 보편적인 생명보험사 상담실보다 더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사무실의 분위기에 창완은 조금 긴장되던 마음이 살짝 풀어지면서 조금은 ‘안락’해졌다.

어이, 김 부장. 어서 들어오게나

늘 보던 선술집에서와 달리 말끔하게 정장을 갖춰 입은 종선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생소한데,

창완은 그가 부르는 ‘김 부장’ 이란 호칭이 바로 자신을 향 한 것이라는 것을 이내 깨닫고는 약간 심술 맞은 표정을 지으며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종선의 방으로 들어섰다.

유리벽과, 반투명한 블라인드로 가려진 종선의 집무실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았으며 집기들은 현대적으로 미니멀한 디자인인데 전반적으로 따스한 크림색이라 아늑해 보였다.

종선이 가리키는 책상 맞은편 의자에 앉자 마음속 불안감과는 달리 편안히 감겨오는 의자가 꽤 편안하다.

- 야, 이해해라. 회사니까. 나는 본부장이고 너는 개발부장이니 그렇게 부르는 게 맞거든. 그 의자 편하지? 무려 백오십만 원짜리다. 하하.

- 이런 의자를 백오십만 원이나?

- 그럼. 인테리어 신경 좀 썼지. 아무래도 고객이 들어와서 뭔가 ‘안락’ 해 보여야 되는 건 기본이거든.


그러고 보니, 평소 종선의 성격과는 맞지 않아 보이는 어딘가 오밀조밀하고 귀여운 디자인의 물건들이 사무실 여기저기에 보인다.

‘ 이 모든 게 결국 연출이라는 건가 ’

속마음과는 달리 창완은 가급적 ‘부랄친구’에게 호감을 보이려는 듯 입꼬리를 억지로 밀어 올렸다.

어쨌거나, 무려 삼 년 가까운 실업자 생활을 청산하게 된 게 어딘가.

아침 출근길에 그의 아내는 평소와 달리 살가운 표정과 호들갑으로 배웅을 하였었다.

‘가장’이라는 게 결국 그 집안의 돈줄이라는 것을 창완도 모르지는 않지만, 내심 쓴웃음이 나오는 일이다.


- 곧 대호도 올 거야. 이미 우리가 제안했던 사업은 시작된 거고, 아마 조만간 국회에서도 곧 법안이 통과될 거야. 그러니 우리도 빨리 준비를 해야지.

- 준비?

- 그렇지. 보험약관도 잘 만들어야 하고, 마케팅도 잘해야 하고, 뭐 그건 내가 할 일이지만.

이미 말했다시피 너는 그.... 보험 실행절차를 준비해야 하니까. 뭐든 필요한 것은 기안을 올리면 우리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본사에 올려서 승인받으면 진행하면 되는 거니까.

- 이렇게 급히 해야 하나?


창완의 다소 당황해하는 표정을 보더니 종선은 작은 소리로 한숨을 쉰다.


- 창완아. 이 모든 게 다 회삿돈이야.

이 건물도 그렇고 인테리어 비용도 그렇고, 하다못해 입구의 보안요원까지 말이야.

회사에선 돈이 들어가면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되기를 원하지. 당연한 거 아니야?


창완이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대호가 노크도 없이 들어섰다.

- 굿모닝! 첫 출근 환영해. 김 부장. 난 어제부터 출근했으니 내가 선배인가? 하하!


실속은 별로 없는 변호사라는 것을 창완도, 종선도 알고는 있었지만 대호는 변호사 시험을 합격한 이후부터는 늘 언제 어디서나 자신감 있어 보이는 언행을 유지한다.

그게 사실 속마음과는 다르더라도, 그렇게 보여야만 재판에도 유리하고 무엇보다 의뢰인들에게 신뢰를 주는 처신이라고 늘 주장하던 터였다.


- 그래. 이 변. 잘 왔네. 우리 김 부장이 출근했으니 본격적으로 안락생명 주식회사 준비를 해야지?


종선은 은근하게 이 모든 프로젝트의 키맨이 자신임을 과시하듯, 창완과 대호를 둘러보며 자신에 찬 말투로 대답한다.

마치 자신이 그들의 상관임을 단단히 못 박듯이.

그리고 이어서 창완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 자,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나와 이 변이 할 일은 생명보험사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일들이야. 보험 상품이 개발되면 늘 하는 일이고 크게 다를 게 없다는 말이지. 문제는.

말을 잠시 멈춘다는 건 자연스럽게 창완과 대호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일 거다.


- 일반적 보험사들은 화재보험은 사고처리반, 생보사에서는 보험료 지급 조건 검토 같은 것을 하는 게 일반적이야.

하지만 우리는 그 역할이 없지.

우리에겐 다른 보험사와는 다르게 ‘약관 종결팀’ 이 필요해.

그게 김 부장, 즉 창완이가 할 일이고 김 부장에게는 제약회사 출신의 차장 한 명, 그리고 보안회사 출신의 대리가 한 명 붙을 거야. 참고로.

잠시 또 말을 멈춘 종선이 창완과 대호의 얼굴을 스윽 훑어보았다.


- 그, 보안회사 출신의 대리는 전직이 교도관이야. 실제로 사형집행 경력이 있는 친구지.

캡처11.jfif 구글 이미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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