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생명보험

7

by 능선오름

7


- 사, 사형집행인이라고?


창완이 당황하며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러자 대호와 종선은 약속이라도 했던 듯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 나란히 창완을 바라보았다. 거의 습관인 듯 다시 휴, 하고 한숨을 쉬던 종선이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연다.


- 창완아. 말이 그렇다는 거야. 텍스트가 중요하냐? 사실 네가 맡은 부서가 할 일이 약관을 종결하는 일, 그러니까 약속대로 가입자가 원하는 대로 ‘안락’하게 만들어주는 일이잖나.

그게 뭐 다른가? 텍스트는 중요하지 않아. 본질은 결국 최종적으로 가장 ‘안락’한 방식으로 가입자를 보내드리는 게 우리가 할 일이고 자네가 할 일 아닌가?

그러니 경험자가 필요한 거고, 그 경험자가 ‘합법적’으로 일을 해온 사람이라면 더없이 좋지 않나.


하긴, 하고 창완은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 고급스러운 단어로 포장한다고 해도 ‘안락생명보험’은 스스로 더는 생명을 이어갈 의지가 없는 중환자들을 대상으로 조력사를 제공하는 게 최종 목적이자 보험의 완성이었으니까.


“복용 - 세코바르비탈과 펜토바르비탈 각각 단독으로 투여하는 방법이 있다. 두 약물의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여러 약물을 조합하는 방식의 DDMP, DDMP2, DDMA, D-DMA, DDMAPh, D-DMAPh, 1/2D-DMA 프로토콜들이 개발되어 현재까지 운용 중이다. 상기 방법들 모두 대한민국에서 법적 허가 없이 사용이 불법인 약물이 포함돼 있다.

주사 - 약물주사형과 동일하다. 바르비탈계열을 주사하여 마취 후, 근육이완제를 주사한다. 근육이완으로 심장과 폐 근육을 포함한 전신의 근육 활동이 억제되어 호흡이 멈추면서 저산소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미국 오리건주, 스위스 등에서 주로 사용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마취가 선행되지 않으면 고통스럽게 질식되는 것을 느끼게 되므로 마취가 꼭 선행되어야 한다.

2017년, 호주의 필립 니스케(Philip Nitschke)가 '조력 자살 캡슐(Sraco Pod)' 모형을 선보였다. (구상도) 석관이라는 뜻의 Sarcophagus에서 딴 이름이다.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이 들어가 버튼을 누르면 질소가 기기를 가득 채워 산소농도를 5% 이하로 떨어트리고 사용자를 5분 이내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구상이다. 캡슐은 생분해성 재질이므로 관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뉴질랜드 장례 엑스포에 전시되었으며, 2022년 스위스에 도입예정이라는 루머가 있었으나 접촉 단계에 그쳤고 모형만 있는 상황이라고 정정 보도가 나왔다. 이후 2024년 7월 19일 스위스의 비영리단체 더 라스트 리조트에서 안락사 캡슐 사르코 사용이 임박했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해당 기기는 질소를 통한 질식사를 유발한다. 최소 사용 연령은 50세이며 키 173cm 이하인 사람만 사용 가능하다. ” 위키백과 펌


- 자, 내가 조사한 바로는 이런 내용들이야. 기본적으로 마취를 선행해서 대상이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하고 질식사에 이르게 하는 것들이지. 뭐든 현재로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있고, 중요한 건.


어물쩍대던 것 치고는 창완도 사전 조사를 했던 것이 분명했다.


- 적어도 ‘조력사’라는 것의 방법론은 이미 보험사에서 조사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종선이 딱. 소리를 내며 손뼉을 마주치며 말했다.


- 그래. 잘 알고 있구먼. 방법론은 많아. 다만 법이 문제인거지, 그렇지 이 변?


종선이 대호를 바라보자 대호가 큼큼 거리며 일부러 헛기침을 하더니 창완을 바라본다.


- 어... 본부장 말이 맞아. 그리고 그 부분은 본부장이 여당 의원 보좌관을 통해서 알아낸 바로는 곧 국회에서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면 세계 최초로, 스위스를 빼면 최초는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보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합법적으로 안락사를 할 수 있는 국가가 될 것 같아.

그러면 우리 사업이 이제 정상적인 영업이 가능하다는 말이지.


종선과 대호가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반면에 창완의 얼굴은 더 딱딱하게 굳어졌다.


- 그런데, 늬들 그건 알고 있나?

내가 알기로는 적어도 지금까지 일어난 조력사 같은 경우에도 그렇고 미국 각 주의 사형집행에서도 그렇고, 마취를 했더라고 환자가... 정말 아무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었다는 증거는 없어.

그게 객관적으로 증명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과정에서 의식은 없었을지라도 대부분은 괴로워하다가 죽었다고 알려진 증례가 많은데....


창완의 말에 종선과 대호는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미간 사이에 주름을 잡았다.

다시 거의 습관인 듯 종선이 휴, 하며 길게 한숨을 내쉰다.


- 창완아. 그게 뭐가 중요해?

- 뭐가 중요하다니? 우리는 안락생명보험이잖아. 안락하게 보내는 게 우리가 할 일 아니야?


창완이 발끈하자 종선이 다시 손을 휘휘 내젓는다.

- ‘우리’가 아니고 ‘너네 팀’의 일이지.

-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 이미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이거야. 그 과정을 집행하는 게 너희 팀이 할 일이고.

그러니 최대한 고객님이 고통을 못 느끼게 과정을 만드는 것은 너네가 할 일이지.

나나 이 변은 법적으로 문제없게 약관을 만들고 고객을 모으는 그런 거잖아.


종선의 논리에 창완은 할 말이 없어졌다.

딴은 그렇다.

인도적으로 생각하면 진짜 고객이 고통스러운데 그걸 표현을 못했을 뿐인지, 아니면 겉으로 보기에는 육신의 반사적인 모습이 고통스러워 보여도 정작 ‘자아’는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 상상뿐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대체로 인간은 타인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괴롭다’라는 인식을 한다.

그 과정이나 과정에서 생긴 사건들을 목격했다면 더욱 그렇다.

경우에 따라 교통사고 현장에서 즉사한 사람이 고통스러웠을지 타인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반대로 오랜 기간 호흡기에 의지하여 살던 사람이 평화로운 얼굴로 저 세상에 갔다 해서,

당사자가 행복한 마음과 상태로 간 것 인지도 타인은 전혀 알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죽기 전 몸부림을 친 상태가 지나칠 정도로 격렬했다고 해서, 그 당사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그런 것인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쩌면 종선이나 대호의 의견처럼 죽음에 이르는 짧은 순간은 살아있는 타인에게는 영원히 미지의 영역이다.

하다못해 중세시대의 무시무시한 사형대로 사용되었던 ‘기요틴’ 조차 의사 기요틴이 참수형을 당하며 괴로워하던 사형수들을 위해 ‘인도적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하지 않았나.

sddefault (1).jpg


매거진의 이전글안락생명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