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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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남대문 시장의 의류 도매 장사에서 시작하여 현재 대그룹을 이루고 있는 회사와 이냥저냥 인연이 있었다.

그야말로 초창기에는 소기업이었지만 지금은 대기업 집단에 들어갈 정도로 발전한 회사.

그 회사의 초창기는 거의 맹목적인 충성도를 가진 직원들의 교육으로 유명했었다.

양재동에 있는 텅 빈 사무실에 백여 개 정도 되는 금속 행거를 대량으로 납품하였었는데, 당시 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백 평은 넘어 보이는 텅 빈 사무실.. 이라기보다는 창고 용도 같은데 그곳에 납품을 받는 과장, 대리 이렇게 두 명이 있었다.

보니 거대한 원단 더미가 백여 개 넘게 쌓여있었다.

아직 사무집기 준비도 없고 전화기도 없는 이제 막 공간을 임대한 듯 보였다.

이래저래 가구 납품을 하면서 빈말로 ‘ 퇴근 안 하세요? ’ 했다.

그랬더니 과장 왈 ‘원단이 이렇게 많은데 퇴근하면 안 되죠? ’

잉? 그러면 어떻게 하시는데요?라고 물었다.

‘여기서 그냥 자야죠. 원단 지켜야지요.’


저런.

물론 고가의 원단. 지켜야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맨바닥에서 밤을 새우며, 아니면 원단 위에서 자니? 아무튼 그 대단한 애사심 혹은 충성심에 놀랐다.

그 회사는 월요일 아침마다 전 직원이 모여 아침 기도회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고,

의류 소매를 프랜차이즈 운영하는데도 주말에는 절대 영업을 않는 것으로 유명했었다.

창업주의 종교 관계로 주일에는 영업을 안 한다는 거였다.

보통 의류 소매매출은 주말에 일어나는 법인데 그걸 안 지킨다는 것만 해도 대단했었다.

협력사들 사이에서도 납품하면 바로 다음 달 입금되는 회사로도 유명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 번 불러서 업체 등록을 가보니 담당자 왈.

‘ 우리하고 거래하시면 이익은 없는 건 아시죠? 그래도 우리 회사와 거래한다는 것으로 충분히 인지도가 올라가니까....’라는 개풀 뜯어먹는 소리도 들었다.

이익은 없다. 그래도 거래해 달라는 업체는 쌔고 쌨다. 그러니 받으려면 받고 말라면 말아라.

이건 뭐 거의 왕 갑질인데, 놀랍게도 그런 회사조차 대기업 군에서 지금까지는 잘 살아남고 있다.

물론 이제 월요 기도회나 주말 대리점 영업금지 따위는 안 지킨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구설수를 겪는 걸 보는데, 초창기 기업정신 같은 건 실종된 지 오래다 싶다.

그저 ‘갑 중의 갑’만 남은 것 같다.

이 정도 현실을 겪어보면, 과연 내가 생각하던 올바른 기업정신 같은 게 실제로 필요한가 싶다.

저와 같은 말을 사십 대도 안 된 대리, 과장 급이 협력사를 상대로 할 정도라면.

하긴.

우리가 상대해 온 정통적 의미의 대기업 담당들도 별반 다르진 않았으니까.

이런 기업풍토 속에서 ‘상생’ 이란 단어는 허울 좋은 현수막 구호 같은 것이다.

엄연히 현실은 이렇다.

소위 ‘잘 나가는 회사’는 협력업체도 직원도 넘쳐난다.

지명도와 대우가 다르니 인력부족에 시달릴 일이 없다.

하지만 중소 업체들은 그럴 수가 없다.

잘해봐야 생존에도 버거운데 더 좋은 조건과 대우를 하기 어렵고, 그러다 보니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거꾸로 배짱을 부리는 협력업체에 휘둘리기도 한다.

그런 꼴을 보는 직원들도 자괴감이 들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 직원들의 경우 그토록 자신이 환멸 하는 대기업에 가고 싶지 않았을까?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펙, 학력, 인맥 등등 많은 부분에서 기준에 미달하여 결국 중소기업, 소기업에 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들은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겉보기에는 늘 비교를 한다.

대기업의 임금, 그리고 처우.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고연봉 샐러리맨들과.

본인이 그 정도 역량을 갖지 못했는데도 비교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그런 그들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게 있는데,

소기업들은 늘 인재가 궁한 편이라서 직원이 기대보다 훨씬 일의 숙지가 빠르고,

평사원이 대리급 업무를 처리하거나 대리가 과장급 업무를 잘 처리해 나가면 바로 승진시킬 수 있다.

연차 같은 게 필요하지 않다.

그야말로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빠른 상승이 가능하고, 그렇게 따지다 보면 오히려 연공서열제에 묶인 대기업의 동갑내기 대비 더 높은 연봉에 나은 처우를 받는 것도 가능하다.


즉, 회사가 필요하면 대우를 높여서라도 인재를 잡는다.

그런데, 그런 노력은 없이 그저 대기업 평균치 대우만 받고 싶어 하니 문제다.

대기업 직원들도 퇴근 후에도 스펙을 높이려고 학원을 다니고 스터디 그룹을 하고,

건강관리를 위해 한강을 뛰고 피티클럽에서 땀을 흘린다.

그러나 소기업일수록 직원들은 자기 발전에 힘을 쏟지 않는다.

그냥 퇴근이 일정하지 않아서, 일이 힘드니 퇴근 후까지는 좀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에 대한 업데이트를 안 한다.

‘업무 시간에 열심히 일했다’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당연한 거다.

업무 시간 이외에도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

‘ 남과 같이 행동하고 살면 남 보다 나아질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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