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 위의 단상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

by 능선오름

미국 영화배우 진 해크먼

유진 앨런 해크먼

Eugene Allen Hackman

1930년 1월 30일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났다. 1945년까지 아이오와주에 살면서 스톰 레이크 고등학교 2-3학년을 마쳤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 나이를 속이고 미 해병대에 입대해 야전무선병으로 중국 칭다오와 하와이, 일본에서 총 4년 반을 복무했다. 전역 후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다가 30세쯤에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다.

70년대에는 꾸준히 대작영화에서 주연으로 나왔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아카데미상 등 여러 상도 많이 수상한 대스타였다. 197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프렌치 커넥션으로 남우주연상, 1992년 용서받지 못한 자로 남우조연상을 수상 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프렌치 커넥션, 포세이돈 어드벤처, 슈퍼맨 시리즈, 노 웨이 아웃, 미시시피 버닝, 더 패키지, 용서받지 못한 자, 야망의 함정, 크림슨 타이드,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에너미 라인스, 로열 테넌바움 등이 있다.

2004년에 코미디 영화 《웰컴 프레지던트》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안 나오고, 동년 7월 7일 CNN 《래리 킹 라이브》를 통해 추후 연기 활동 계획이 없다는 취지로 밝혔으며 2008년 6월 5일 <로이터> 인터뷰를 통해 은퇴를 재확인했다. 은퇴 후에는 소설가로 변신해 주로 집에서 기거한다고 한다.”

“현지시각 2025년 2월 26일 오후 뉴멕시코주 산타페의 자택에서 아내, 반려견과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범죄 혐의점은 안 나왔으나, 아내 베치 아라카와는 1959년 12월 15일생으로 사망 당시 65세였다.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요즘 기준으로 자연사하기엔 이른 나이이다. 그리고 해크먼 역시 9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망 전까지 투병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정정한 상태였다. 거기다 이들 부부의 집을 정비하던 정비 직원들은 불과 2주 전까지도 부부와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보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려견까지 한날한시 동시 사망은 우연이라 보기엔 너무나 정황이 의심스러운지라 영장이 청구된 상태다.

해크먼의 시신은 자택 현관에서 발견됐고, 당시 회색 트레이닝복과 긴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으며 옆에는 선글라스와 지팡이가 있었다. 경찰은 일단 그가 갑자기 쓰러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부인 아라카와의 시신은 욕실 바닥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경찰은 집에 강제로 침입했거나 물건을 뒤지거나 가져간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두 사람의 시신에도 외상의 흔적은 없으며 유서도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일산화탄소 중독이 해크먼 부부의 사인으로 지목되기도 하나 가스 누출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해 사인은 오리무중인 상태이다. 수사 당국은 부부의 사인으로 범죄의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고 있으며 일단 일산화탄소 중독과 독성 검사를 요청했고 현재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

미국 영화의 부흥기를 풍미했던 배우 ‘진 해크먼’에 대한 기사들이다.

어쩌다 보니 그가 나온 유명한 히트작들은 모두 관람하였다.

영화관에서 본 것도 있지만, 연휴 때면 티브이에서 줄곧 재방송을 해줘서 많이 본 영화도 있었다.

한국 영화배우로 치면 거의 안성기 배우 급의 위치인데, 구십 세가 넘은 나이에 자연사도 아닌 상태로 발견이 되어 안타깝다.

아니, 자연사였을 것이다. 진 해크먼은 구십의 나이가 넘으면서 치매도 동반되었었고, 아내가 갑자기 자택에서 사망했는데 아내의 사망을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로 며칠 살다 쓰러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하니까.

시대를 풍미한 대배우의 최후로서는 많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내용이다.

최후가 쓸쓸하지 않은 인간이 있겠냐만, 늘 매거진에 안 빠지고 나오던 사람 치고는 너무나 허무하게, 객사 비슷한 형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연로한 대배우, 나쁘지 않았던 재정상태에서도 그들을 돌볼 사람이 아예 없었음은 특이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뉴스 톱을 장식하던 정치인이 자동차 안에서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최근에 접했었다.

늘 ‘싸움꾼’ 형태로 이미징화 되어있던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외진 곳에서 좁디좁은 자동차 안에서 아무 말 못 하고 조용히 생을 마감해야 했었을까.

두 가지 사례 모두, 살아서의 영광 따위는 참 보잘것없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살아서 대중의 선망을 받던 대 배우던, 권력의 정점에서 무서울 것 없이 돌이키지 못할 언쟁도 늘 뉴스를 장식했던 정치가도, 그렇게 죽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거다.

결국 살아있을 때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가도 중요하지만,

죽었을 때 남겨지는 모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 사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정한 나잇대가 지나고 나면 늘 내가 죽고 난 후의 사람들도 생각해야 한다고.

그들이 혼란스럽지 않게, 내 보잘것없던 자취가 난삽하지 않게 늘 정리를 해둬야 한다고.

매일 아침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고 정리할 게 없다 는 식으로 생활한다면 일상이 많이 단출해질 것이다.

그리고 뭔가를 자꾸 사들이는 행위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나의 후대에게 물려줘도 부끄럼 없고 오히려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라면 몰라도,

내가 아닌 타인에게는 예쁜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은 모조리 걷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일상이 단조롭고도 조화로워 질 것이다.

사람이 죽고 나면 남는 건 별로 없다.

법적인 동산, 부동산 혹은 빚.

그것 외에 남는 모든 것은 많아야 1톤 화물차 분량의 쓰레기들 일 것이다.

좀 더 많은 사람이라면 2.5톤 분량의 쓰레기 일 터.

살면서, 많은 쓰레기를 후대에 남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단출하게, 서류상에서 ‘사망’ 두 글자로 만 남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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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조(謹弔)'는 한자어 謹(삼갈 근)과 弔(초상 조상할 조)가 합쳐진 말로, '삼가 초상에 대하여 슬픔을 표한다초상집 빈소나 깃발, 화환 등에 쓰이며,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편안히 영면하도록 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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