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복약 중입니다

나만의 전쟁

by 능선오름

잠못듦에 대한 약을 아직도 먹고 있는 상태다.

의사는 잠이 안 와서 약을 먹는 것에 대해 죄책감 같은 것은 가질 필요가 없다곤 하지만,

평생 비타민 한번 먹은 일이 없던 입장에서는 자괴감이 따라온다.

그냥 버텨보려고 했던 일도 수없이 많지만 결국은 찾아오지 않는 잠 때문에 약에 굴복한다는 마음이 크다.

추석명절 연휴에 노모께서 화장실에서 낙상하여 크게 골절을 입으셨다.

안 그래도 치매가 약간 있으셨는데, 그게 더 악화하여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연세가 있고 골다공증까지 있어서 병원에서도 수술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이래저래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감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집에 가겠다고, 당신께서 팔이 부러진 것도 인지를 잘 못하는 어머니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당신 혼자 몸으로 뭘 어떻게 하지도 못하시는 상태에서,

나 역시 어머니를 모시며 수발들 상황이 안 되는 상황이니 그야말로 먹먹하기만 하다.

작은 누나가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 요양병원에 모신게 그나마 그중 다행이긴 한데,

누나 역시 처음 겪은 일이니 매일처럼 어머니의 급변하는 상태를 나에게 문자와 전화로 하소연하니, 당연한 말을 하는 건 알겠지만 내 상태도 급격히 나빠진다.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하고,

타인들에게 어머니를 맡기곤 대책 없이 바라봐야 하는 무력함.

당신의 상태와 상황조차 판단이 불가능한 어머니.

반 치매상태에서도 늘 나를 걱정하시고 어서 돌아가라 채근하시던 어머니는 간데없고,

항상 자식 걱정에 몰두하시던 어머니는 간데없고 생떼를 부리시니 억장이 무너졌다.

누구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게 현재 나의 상황이라는 현실에 나 역시도 갈피를 못 잡는 상태가 되었다.

밥도 먹을 생각이 안 나고, 그 좋아하던 커피도 쓰기만 해서 마시지 않은지 삼 주가 되었다.

합치면 겨우 밥 한 공기 정도 될 분량을 하루에 나눠 먹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사회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었을 뿐 식욕은 없다.


그게 반복되니 체중도 빠지고 기운도 빠져나가서 결국 병원에서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다.

담당 의사는 마음의 감기 같은 것이니 너무 자책을 말고 당분간 약을 드시라고 권한다.

우울증 약을 먹는다고 쾌활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머릿속을 지배하는 온갖 생각들이 흐릿하게 되는 것뿐이다.

대신 평상시와 달리 머릿속 이성도 함께 흐릿하게 변한다는 문제는 있다.

마음이 아프니 몸도 따라간다고 하루종일을 ‘버텨낸다’는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다.

나 스스로 내린 판단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없다.

상황이 된다면 얼마간이라도 아무것도 않고 퍼져있고 싶지만 내 속과는 아무 상관없이 세상은 돌아가고 있으니까,

최소한의 관계와 최소한의 대화만으로 계속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머리 한 켠에서는 ‘이겨낸다’라는 단어를 되뇌고 곱씹고 있지만 쉽지 않다.

이성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약물에 의존해서 하루를 지내는 게 싫어서, 그나마 수면제에 의존하는 것도 싫었는데 우울증 약까지 복용한다는 게 너무나 자괴감이 든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상황에서 나처럼 반응하진 않는다는 것도 맞다.

하지만 타고난 기질 탓인지, 아니면 시기 탓인지,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두고 살아서인지 내겐 참으로 힘들고 버거운 나날이다.

이보다 더 안 좋은 상황들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었는데.

나이 탓인지 지침 탓인지 현재 상태는 블랙아웃에 가깝다.

매일 루틴처럼 출근 후 써가던 하찮은 글조차 쓰기 어려울 정도로 다운되었다.

결국 이 모든 투쟁은 나 혼자의 몫이며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다.

좋아질 것이다.

좋아지고 나아질 것이다.

더 단단해지고 더 치열하게 버텨볼 것이다.

아직은 약물에 의지해서 버텨내고 버티는 하루하루 이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그리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아직 복약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