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광풍이 막 시작되던 무렵 수십 년 만에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생애전환주기의 탓 이라기보다는 운동 한번 안 하고 마구잡이 식생활을 해온 대가로,
고혈압 전단계 당뇨 전단계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 약을 먹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 끝에 하게 된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3km 정도만 가도 너무 힘들어서 되돌아오곤 하기를 반복.
수십 년 쓰지 않던 몸뚱이는 ‘활동’이 아닌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일으켰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자전거에 몸이 익숙해지고,
러너들이 경험하는 러너스 하이처럼 한강 자전거도로의 구간들을 극복하며 다니다 보니 자전거쟁이 열풍에 본의 아니게 끼게 되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자전거들을 욕심내고, 자전거 용품들을 열심히 사모으며 체력상 극단적으로 힘든 코스들을 빼곤 한강 자전거 길, 아라뱃길, 파주 자전거도로들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혈압은 자연스레 떨어지고, 당뇨수치도 함께 자연스럽게 낮아졌다.
코로나 시기여서 나 홀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며 자전거 인구들도 급증했었다.
그러다, 코로나의 중심에서 대폭발을 겪게 되었다.
마치 그라운드 제로의 중심에 있던 것처럼 반쯤 넋이 나간 상태에서 자전거를 탈 마음도 들지 못했다.
그렇게 수십 년 만에 찾은 비교적 ‘좋은 길’을 결국 접고 그간 모았던 애착하던 자전거들 대부분을 팔았었다.
그렇게 이 년 정도를 지나고야 다시 그라운드 제로의 중심으로부터 재활을 꿈꾸게 되었다.
다시, 경험하지 못했던 자전거들을 모으고 타고 반복적으로 한강길을 달리며 조금씩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을 서서히 회복해 오던 중이었다.
사람의 운이란, 당장 코앞의 내일 아니 극단적으로 한 시간 후도 알 수 없는 법이다.
세월이 흐르면 누구에게나 올 여러 가지 굴곡들이 다시 내게 찾아왔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우울함과 자격지심에 도리없이 해야 하는 일상의 반복 외의 것들을 놓았다.
주유소 바닥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며 무릎 연골이 찢어지는 것은 내 자린이 활동의 종말을 고하는 것 같았다.
쉽게 낫지 않는 부분에 타격을 입고, 마음마저 덩달아 연이은 타격을 입으니 자전거는 언감생심이었다.
자전거가 공예품도 아니고, 주인을 잘 만났으면 한창 여기저기를 누빌 자전거들이 몇 달을 처박혀 있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늘 무거웠다.
자전거가 생명체는 아니지만, 본래의 목적인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주인을 만났다는 것은 자전거에겐 불행한 일이다.
생각 끝에 아껴오던 자전거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들인 정성과 애착을 생각하면, 내 몸이 어느 정도 원상태로 돌아가면 아껴주리라고 생각만 하고 있던 자전거들을 타인들의 손에 넘기는 과정은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러나,
달려야 할 자전거들이 창고에서 먼지만 쌓이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보다는 나아 보였다.
그렇게 대부분의 자전거들을 정리하고, 언젠가 재활의 시점에 탈 수 있는 두 대 정도만 남기곤 이제 자전거에 대한 일방적인 애정은 정리하려고 한다.
언젠가 몸이 나아지면 또다시 욕심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몸을 갈아 넣어 몰아붙이는 시기는 지났다는 생각이다.
이제야말로 자전거도 구름에 달 가듯 산책하듯 타야 하는 시기가 왔음을 새삼 깨닫는다.
좀 더 어린 시절, 더 젊었던 시절에 못했던 것들을 나이 들어서 집착하는 어른들이 있다.
키덜트 문화라고도 하고, 갖지 못했던 것들을 마치 스스로에게 보상하듯 하는 심리.
나 역시 거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몸 상태가 나아지면 지금의 결정이 성급했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애착물들에 대한 미련이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집착이 있어도 결국 나 하나의 몸으로 탈 수 있는 자전거는 한 대 일뿐,
물건에 욕심을 내어 끌어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는 안다.
그래서 마치 또다시 그라운드 제로의 한 복판에서 작은 들꽃이 피어나듯 나도 그리 하려고 한다.
메마르고 삭막한 겨울이 지나면 봄은 남모르게 절로 돌아올 것이다.
봄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다시 한강변을 스쳐 지나는 두 바퀴 위의 단상도 돌아올 것이다.
그리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