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라떼는 말이야 1

어린 딸에게 미리 들려주는 이야기

by 능선오름

딸아.

아빠는 오늘부터 너에게 들려줄 말을 좀 남겨보려고 해.

너도 알다시피 아빠와 너는 무려 반백 년의 나이 차를 가지고 있잖니.

아빠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빠가 청소년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 시절에 네 친할아버지는 이미 환갑에 가까워지던 연세였었어.

물론 너와 아빠의 나이 차보다는 좀 낫지만,

그런데도 네 할아버지와 청소년인 아빠와는

워낙 시각 차이가 크고 또 옛날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할아버지는 말수가 적었거든.

더구나 당시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누워계시던 시기라 당장 힘들던 환경에서

아빠와 네 할아버지가 ‘대화’를 나눌 시간들은 거의 없었어.

아니, 시간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공감하고 나눌 주제도 거의 없었다고 봐야지.

네 할아버지는 전쟁을 직접 겪으신 문자 그대로 ‘역전의 용사’ 셨고 아빠는 그저 철부지에 불과했으니까.

그런데 아빠가 생각해보니,

아직은 어린 네가 사춘기가 오고 성인으로 발돋움할 나이에는 아빠는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 있겠더라고.

물론 지금도 어찌 보면 조손으로 의심받는 상황도 가끔은 있지만 말이야.

아직 실감은 못 하지만 아빠가 기운 다 떨어지고

소위 ‘꼰대’로 완전히 자리 잡은 이후에 MZ 세대보다 더 젊은 네 생각을 공유하고

아빠의 생각을 나눌 시간과 상황이 있을까 싶어.

그래서 아빠는 미리 지금 네게 나중에 해줄 말들을 좀 기록해 보려고 해.

물론 네가 원할지 어떨지,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는 아빠도

‘ 아, 내가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을 했지’라는 마음이 들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들을 남겨둬야

나중에 행여라도 아빠가 네게 말을 들려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네게 잔소리 혹은 조언 혹은 충고 같은 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야.


아빠가 네 친할아버지와 이별한 지 벌써 삼십여 년이 흘렀어.

막 성인이 되려던 아빠가 졸지에 집안의 남자 어른을 잃은 거야.

그 이후로 아빠는 일상을 살아가려고 좌충우돌의 삶을 살아왔고 살아오고 있지만

지금도 아직 아버지가 그립고 필요해.

아무것도 안 하시고 그냥 누워계시더라도,

아빠에게 쓴소리 한 번 해주실 어른이 필요하더라.


그래서…….

아빠가 네게 남길 글을 미리 적는 거야.

결국은 ‘라때는 말이야’로 마쳐지는 궁상이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너에게 남겨줄 유일한 창구라고 생각해서 남기는 거니 언젠가,

네가 아빠의 글을 읽게 된다면 고개 한 번 끄덕여 주면 좋겠다.

어쩌면 네가 이 글을 읽을 나이가 되었을 때는

‘아빠는 역시 꼰대라서 옛날 사람들 같은 이야기를 굳이 남겼어? ’라며 투덜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을 쓸 때 아빠의 마음만 조금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현재 시점에 너에게 아빠가 구구절절 이야기해 봐야 네가 전혀 이해도 공감도 어려울 이야기들.

그런 아빠의 충고 혹은 세상을 이렇게 살아보라는 잔소리 같은 것들이

지금 당장은 너에게 아무런 필요가 없고 와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

그래서 앞으로의 세월을 훌쩍 앞당겨서

아빠가 장래에 너에게 늘어놓을 잔소리들을 차분하게? 정리해 놓는다고 생각하렴.


듣기 싫다고?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앞으로 늘어놓을 아빠의 잔소리 시리즈는 이른바 ‘성공사례’는 거의 없을 거야.

대부분이 실패하거나 실수했던 이야기들이 될 거야.

사람이란 자신이 살아오는 과정을 미화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왜냐하면, 자기합리화가 필요하고, 그렇지 않다면 늘 후회 속에서 살아갈 테니까.

그러나 아빠는 네게 아빠가 살아오며 실수하고 후회할법한 이야기들을 좀 나눠주려고 해.

그건 네가 아빠와 같은 실수들 혹은 나이가 들며 후회할 일들을

좀 적게 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같은 거지.

그런데도 실제 겪어보지 않는 한 비슷한 실수를 반복할 수 있음은 알아.

그래도…. 아빠니까.

딸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가능한 좌절감을 덜 가졌으면 하는 노파심이야.

네가 ‘노파심’이라는 단어를 이해할 나이가 되어 이 글을 읽는다면 좋을 거야.


사랑해.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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