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라떼는 말이야 2
고민을 미리 대출해서 살지 마
딸아.
아빠는 요즘 커가는 너를 보며 한편 기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많아.
아빠의 타고난 성격이
없는 걱정거리도 미리 앞서
걱정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도 알고,
너 또한 도리 없이 유전자의 힘으로 약간 그런 면이 보일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긴 하지만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요즘 티브이 뉴스를 보지 않아.
뉴스 따위 관심 없는 너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오래도록 뉴스를 알아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에 눌려있던 아빠에게는
굉장히 획기적인 변화이기도 하지.
아빠가 뉴스를 보지 않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정말 ‘필요한’ 뉴스라면 원치 않아도
온라인 포털에 머리 장식이 되기도 하고,
정말 긴급한 알림은 문자로 날아들고 내가 아니어도 주변에서 ‘이 소식 아세요?’라는 사람이 널렸거든.
정작 뉴스 프로그램을 보면 제법 세상을 살아온 아빠의 시선으로 바라보아도,
이 세상이 절망투성이로 보이거든.
질병, 전쟁, 부동산, 금융위기, 묻지 마 살인, 묻지 마 폭행,
사회적으로 인정받던 사람들의 엽기적인 범죄 등등.
그저 듣기만 해도 우울해지고 장래가 암담해지는 일들 뿐이지.
그러다 갑자기 어떤 뉴스에서는 언제 그랬냐 싶게
아이돌 그룹 누구누구가 고급 차를 샀고 부동산을 샀고 해외여행 중이고…….
그런 뉴스 또한 방식만 다를 뿐 소시민인 우리에게 박탈감을 주는 건 다르지 않지.
다시 아주 멀리.
네가 태어나기도 전 아빠의 한창 시절들을 생각해봐도 좋은 뉴스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
늘 전쟁의 위기,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엽기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인 범죄들.
뉴스라는 게 원래 그렇지만,
늘 뭔가 아슬아슬하고 사람의 긴장을 돋워야만 시청률이 올라가는 속성 때문인지
항상 그렇게 자극적인 머리말로 시작하잖아.
그래서 아빠는 이제 뉴스에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어.
말 그대로 ‘news’ 여야 하는데 아빠가 알게 된 뉴스들은 이미 타인들이 다 알고 있는 거야.
그 뉴스를 통해 아빠가 뭔가 깨닫고 뭔가 대비하는 그런 일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
그게 아빠가 뉴스를 외면하려는 이유란다.
딸아.
요즘 네가 집중하는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들도 마찬가지야.
그게 잠시 기분을 전환하거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어.
그러나 대부분은 진실이 아니거나 진실을 과하게 포장한 것들이 많아.
너와 같이 철 모르는 구독자들에게 뭔가를 자극적으로 보여줘야 하니까.
더구나 그런 개인방송들은 대개
누구의 검증이나 누군가로부터의 제재를 받지 않으니
정말 제멋대로 나오는 대로 해도 대개 본인에겐 피해가 없거든.
그 영상을 보고 진실이라 믿거나 따라 하거나 하는 구독자들이 피해를 보는 거지.
형태는 다르지만, 과거에도 그런 사람들은 늘 있었어.
사실과 무관한 말들을 퍼뜨리고,
그런 이슈를 통해서 무책임한 소문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주 옛날부터 늘 있었지.
단적인 예로 중세기 때 ‘마녀사냥’이 그러하고,
우리 조상들도 ‘여자가 배를 타면 재수가 없다’라는 그런 유의
뜬금없고 근거 없는 말들이 엄연히 세상의 ‘진실’이자 ‘규칙’ 같은 게 되던 시대가 있지.
그러니 딸아.
너는 그런 세상의 분위기에 휩쓸리며 살지 않기를 바라.
아빠가 며칠 전에 너 잠들기 전에 해준 이야기 기억나?
우리가 사는 은하계에만 지구의 비슷한 행성이 60억 개가 넘고,
현재의 우주과학으로 볼 수 있는 은하계의 수만 해도 1천7백억 개가 된다고 한 말.
뉴스 나 새로운 정보 같은 것을 앞세워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들이 얻는 게 있어서 그렇게 하는 거야.
온 우주를 기준으로 보면 지구라는 존재도 극히 미미한데,
더구나 그 지구 안에서 작은 땅덩이에서 일생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
그러니 그 모든 사람에게 우주의 크기나 은하계의 소식은 대부분은 불필요한 거야.
네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오늘, 내일이란다.
너무 멀리 너무 넓게 생각하는 삶은 아무 필요 없는 고민일 뿐이야.
딸아.
너는 너에게 주어진 순간들을 기쁘게 즐기며 살렴.
돌이켜보면 아빠가 일평생 고민하던 일들의 대부분은 고민한다고 달라지지도 않았었고,
그 고민을 바탕으로 뭔가 대책을 세워서 안전하게? 끝난 적도 없었어.
고민이란,
당장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워주기만 할 뿐
실제로 고민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뭔가 해결된 적이 없다니까?
아빠가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보니 아빠는 ‘돈’만 대출한 게 아니라
고민까지 대출해서 미리 앞당겨서 쓰면서 살아왔더라고.
그러니까 딸아. 고민을 대출해서 살지는 마.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가게 마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