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라떼는 말이야 3

너는 너 자신만으로 훌륭해!

by 능선오름

딸아.

요즘 너는 너도 모르게 네 반의 친구들이나,

티브이에 혹은 인터넷 동영상에 나오는 또래들과 너를 계속 비교하더라?


그럴 필요 없다고 아빠가 말을 하면 넌 대뜸

‘비교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래’라고 퉁명스레 답을 하곤 하지.


그 아이들이 너보다 공부를 잘하고, 줄넘기를 잘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피아노를 잘 치고,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고, 로봇 조립을 잘하고,

큐브 맞추기조차 잘한다고.

나는 열심히 하는데도 그게 잘 안된다고 속상해하곤 하지.


오래전이지만 아빠가 네 또래 때 고민하던 것들을,

네가 고스란히 고민하는 것 같아서 아빠는 이따금 네 말에 가슴이 먹먹하기도 해.

늘 아빠보다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친구들을 잘 사귀거나,

좋은 학용품을 가졌거나……. 등등 헤아릴 수 없지.


아빠 때는 가정방문이라는 게 있었어.

초등학생 집을 담임 선생님이 날 잡아서 일제히 방문하는 거야.

그때는 초등학교 한 반의 학생 수가 오십 명을 넘었었으니,

사실 선생님들께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지.


가정방문이 왜 필요한가였는지는 그땐 몰랐어.

요즘은 하지 않는 ‘가정환경조사서’라는 것도 있었으니까.

지금의 네 또래가 보면 어리둥절하겠지만,

그 조사서에는 아빠·엄마의 최종학력부터 집안 물건들을 표시하는 항목도 있었거든.

티브이, 라디오, 전화, 전기밥솥 등등.

그땐 냉장고나 세탁기는 아예 드물어서 조사항목에도 포함이 안 되었었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적어도 그때 당시의 선생님들은 지금의 선생님들보다는

100배 이상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였고 (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야 ),

사회복지가 안 좋던 시절에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양육이 되는지

선생님이 직접 챙기라는 뜻도 아마 있었을 거야.


오전 수업을 빨리 마치곤 선생님이 반 아이들을 다 데리고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들의 집부터 방문하는 거야.

이게 참 웃기는 게 그 친구들이 집에 가지도 못하고

수십 명이 선생님 뒤를 졸졸 따라가며

해당 친구 집에 가면 친구의 엄마와 선생님이 면담하고,

아이들은 집안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기다리거나

집이 좁으면 집 앞 골목에서 쭈그려 앉아서

선생님 면담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거지.

그리고 아빠는 그렇게 뒤로 밀리고 밀려서 아빠 집에

선생님이 도착한 시간은 거의 어두워질 무렵이었어.

내 뒤로 방문이 남은 아이들은 몇 안 되었지.

그때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아빠는 도착하자마자

너무 배가 고파서 엄마가 챙겨준 찐 고구마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고,

길지 않게 선생님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게 기억나.

지금도 잊지 않는 말이

‘ 00 이가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고 공부도 잘하고…….’ 운운.


그 당시의 아빠 생각은 뭔가 이상하다 싶었어.

물론 선생님을 따라 시작된 반 친구들의 집 순례에서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어.

인스턴트커피가 그랬고, 티브이, 전화기, 집안의 수도 같은 것들이 신기했었지.

그렇지만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씀하신 순간부터

어쩐지 나는 어려운 집 아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 거야.

물론 선생님 나름으론 격려하기 위한 말이었을 거라 생각은 해.

그야말로 반나절 동안 서울 변두리 초등학교 아이들의 생활상을,

민낯을 생생하게 겪고 확인하는 과정이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아빠는 그때까지만 해도 ’ 우리 집이 어렵구나. 우린 없는 게 많구나.

다른 아이들이 잘 사는 거구나. 난 불행하구나. ‘이런 생각 해본 적도 없었거든.

오히려 그 가정방문을 통해서 뭔가 그런가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 거지.

한 가지 다행이라면.

학교를 중심으로 방문이 이루어지다 보니

최소한 학교에 가까워서 좀 ’사는‘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못 사는 ‘ 아이들의 집을 방문할 기회는 없었다는 거야.

물론 맨 마지막으로 방문을 했던 집의 아이와 부모가 느꼈을 심정은

좀 자라서는 익히 짐작이 가지만.

어찌 보면 초등학교 2학년에 불과했던 아이들에게,

세상의 ‘현실’을 뼛속 깊이 실감하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그런데 딸아.

지금 우리가 사는 것이 세상의 평균으로 봐도 그리 나쁜 건 아니잖니?

우리보다 잘 산다는 사람이 많고 못 사는 사람도 많겠지.

그러나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야.

비교할 이유도 비교당할 필요도 없는 것들이고, 그게 또 영원한 것도 아니야.

사람이 자라 가며 나이가 들어가며 많은 게 달라지고 바뀌어.

너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도 나중에 몇 년 후면 네가 더 잘할 수도 있고,

또 네가 피아니스트가 될 거 아니면 좀 더디면 어때?

그냥 너는 네가 만들어내는 음을 즐기고 재미있게 노래하면 그만이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살아간다는 건,

평생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살아간다는 뜻이야.

그러니 그런 비교에서 벗어나 너 자신으로 자유롭게 살려무나.

넌 너 자신만으로 이미 훌륭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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