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 것은 무섭지 않아!
딸.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너이기에,
게다가 올해,
네 나이에 너무나 힘겨울 큰일을 치렀기에 아빠 곁에서 늘 잠들고 혼자 있으면 불안해하는 거.
아빠는 이해해.
아직 어리니까.
하지만 이따금 네가 유치원 때의 안 좋았던 기억으로 혼자 승강기 타기를 두려워하거나,
밤에 아빠가 거실에 있는데도 혼자 잠드는 걸 무서워하는 걸 보면 아빠는 또 가슴이 무거워지네.
그 정도로 뭔가 늘 불안한가 싶어서 말이야.
어찌 보면 네 나이에 당연할 수도 있긴 하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네가 ‘세상 혼자’라는 걸 느낄 날들이 적지 않을 거니 아빠는 걱정이 돼.
알겠지만 너는 8달 만에 일찍 태어나서 두 달간을 인큐베이터 안에서 지냈잖아.
매일 아침저녁 소아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작고 여린 네가 혼자 투명한 플라스틱 통 안에 얼기설기 줄을 매달고 누워있는 걸 볼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팠어.
새 생명이 태어났는데 기뻐할 겨를도 없이 하루에 두 번.
주어진 시간 삼십 분만에 너를 바라보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는 얼마나 눈물지었는지 몰라.
홀로 병원 인큐베이터에 남아있는 네가 안쓰러워서 말이야.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은 어차피 쌍둥이가 아닌 이상 태어나서부터 혼자 이지.
물론 보호자로부터 보호를 받긴 하지만 기어가기부터 이유식 먹기 머리 들기 걷기 모두 혼자 이루어낸 것이야.
인간의 특성이 다른 동물과 달리 보호자의 적극적인 양육이 없으면 당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네가 살아온 대부분은 사실 너 혼자 이루어낸 것이 대부분이야.
처음 네가 젓가락질을 배울 때도 대체 무슨 마음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너는 울며불며 고집스럽게 한나절 동안 혼자 젓가락을 손에 익혀보려고 애를 쓰다가
기어코 젓가락질하게 되었었지.
그때 아빠는 정말 네가 대견했었어.
아, 아기는 정말 스스로 자라는구나. 혼자 커가는 거구나.
모든 게 선생님과 부모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결국은 너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야.
네가 원하는 것을 네가 스스로 하려고 한 것이니까.
서는 것, 걷는 것. 말하는 것. 옷 갈아입는 법, 용변 처리를 하는 법.
태어나서 얼마 안 된 시간에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네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네 힘으로 이뤄낸 것들이었거든.
그러니 너는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어.
반대로, 타인이 너를 무조건 도와줄 리도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해.
네게 소중한 가족, 그리고 주변 선생님들이나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대가를 바라고 너를 돕진 않지만,
그들은 결국 네가 혼자 무엇을 하는 걸 도와줄 뿐 대신해주지는 못한다는 것.
성인이 되면 대가를 치르고 도움을 받는 경우들도 많이 생길 거고.
그러니 사람이란 본래 혼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갈 때도 혼자 가는 거야.
그게 세상의 섭리이자 자연의 섭리이니 서럽게 생각할 일이 아니야.
아빠만큼은 아니라 해도 네가 살아가며 너를 사랑하는 사람,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이성 간의 사랑이
서로 따라서 죽음에 몸을 던질 정도로 로미오와 줄리엣 같지는 않아. 대부분.
좀 냉정하게 말하자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나이가 문제야.
세상 무서울 게 없고 오늘만 살아도 후회 없다는 식의 연령대였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쁜 게 아니야. 너무한 것도 아니야.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우선하여 ‘나’를 지키려는 본능이 있고 내가 생존해야 타인도 돌볼 수 있는 거야.
아주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은 다른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이 그래.
냉혹한 게 아니라 그런 본능이 없다면 아마 대개의 생물이 희생하다 멸종이 될 거야.
‘우리’는 모두 함께 모여서 문명을 이루고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지.
그건 보이지 않는 약속과 법률, 그리고 서로 최소한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거야.
만약 문명의 혜택이 사라진 상태에서 개개인이 홀로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이따금 디스토피아적 인류의 미래를 그리는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홀로 살아남게 되어있으니까.
그러니 딸아.
혼자 있음을 결코 두려워할 필요 없어.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고, 혼자 걸어 나가야 하는 거야.
홀로 오롯이 자신의 길을 걷다 보면
오히려 주변에 너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고 다시 멀어지기도 할 거야.
그 모든 것을 네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받아들이고 살아가면 돼.
이 세상의 이치는 참으로 기묘하고 아이러니한 게,
타인들에게 의존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은
최대한 이용하거나 그들의 의존성을 거꾸로 역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해.
반대로 홀로 잘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일말의 존경심과 함께 함부로 범접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
보통 낯선 여행지에서 봉변을 겪는 여성 여행자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해.
그날 생전 처음 본 여성에게 이유 없이 친절하게 구는 사람이 뭐겠어?
그냥 좋은 곳이라서?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친절해서?
아니야. 설혹 그 호의가 정말 좋은 마음이었다고 해도 이유가 없는 호의를 받을 필요는 없어.
너는 너의 문명으로 충분히, 네가 갈 길을 찾아갈 수 있을 테니까.
세상을 두려워 말고,
거친 들판에서도 너의 힘으로 잘 걸어갈 수 있으니 두려워 말아라.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