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 위의 단상 1

미니벨로를 타다

by 능선오름

두 바퀴 위의 단상 1


바람이 차다.

내일모레면 십이월이니 당연히 차가워야 한다.

그간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안 추웠던 건 잠시 잊었나 보다.

일주일에 두어 번.

유일하게 몸을 쓰는 주말의 오전.

어깨에 지워진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나만의 무게를 싣고 돌아다니는 두어 시간의 제한된 자유.

역병으로 계획 없이 시작했던 기십년만의 자전거.

흔한 사이클이나 그래블 타입의 자전거 다 외면하고 굳이,

미니벨로라 불리는 조그만 바퀴의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게 벌써 이 년이 넘었다.

한강 자전거도로를 나가보면 차고 넘치는 게 자전거족인데 그중에 나처럼 작은 바퀴 자전거로 낑낑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시에서 권장하는 따릉이조차 내 자전거보다는 바퀴가 크니까.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작은 바퀴의 자전거를 택한 건 나를 닮아서였다.

인생이란 제각기 다른 크기의 상황들을 따라간다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진 탄생.

거기에 맞춰 애쓰거나 혹은 여유롭거나.

포르셰는 포르셰의 주행속도가 있고 경차는 경차의 주행속도가 있다.

내겐 작은 바퀴 자전거의 속도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태생이 작은 바퀴라 때로 지나쳐가는 사이클 무리나 mtb 무리를 보고,

애써 다리에 힘줘 추월도 한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 무리들에 따돌려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게 내겐 차라리 편하다.

허벅지가 터져나갈 듯 보이는 사이클 동호회 회원들에게 경쟁심 같은걸 느낄 이유도 없다.

내게 두 바퀴란,

약간 높아진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과,

잠시라도 두 다리가 멈춰지면 바로 균형을 잃게 되어 세상에 대한 잡생각을 잠시 잊는 과정이니까.

일생 안 써오던 근육들에 오락가락 불규칙적인 긴장을 주면 이내 내 허접한 육신의 한계를 깨닫는다.

살아온 시간 태반을 먹고사는 것 외에는 안 쓰던 근육과 감각 체계들이,

새로운 자극에 이따금 비명을 지른다.

불과 몇 센티 차이가 없을 높이의 변화.

걷는 것보다는 좀 더 빠른 속도의 변화.

이런 것들은 작지만 커다란 차이가 있다.

두 바퀴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마주쳐 오는 자전거가 위태로워 보이면 피한다.

뒤에서 어떤 무리가 악을 쓰며 추월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면 갓길에 붙어서 슬슬 달려주면 그만이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 수 없고,

나 또한 타인을 흘깃거릴 필요가 없다.

스쳐 지나면 그뿐이다.

아슬아슬한 균형 속에서 바라보는 한강은 늘 넓고 여유롭다.

갓길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이나 억새 혹은 낙엽과 단풍들도 무심하게 계절을 알릴 뿐이다.

오직 핸들과 페달과 주변에만 집중해야 하는 시간.

인생도 그런 거 아닐까.

당장.

눈앞을 집중하라.

두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라.

그래야 넘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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