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수는 육수다
심야 식당 2
처음 식당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육수를 만들어 놓는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육수'를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어떤 요리도
비교적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것 조차 처음엔 쉽지 않아서
만들고 보면 비린내가 난다거나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숱하게 거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육수라는 것 역시 오랜 시간 기다림을 통하여 완성된다는 것.
멸치 육수를 만들어 보려고 해.
육수용 멸치를 고를 때 조금 비싸더라도 냉장 보관된 놈 들이 좋지.
멸치를 쪄서 말리긴 하지만 그래도 보관이 중요한 거니까.
남해 죽방렴 멸치가 좋긴 한데 구하긴 쉽지 않지.
멸치들이 은은한 금빛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니면 죽방멸치가 아니지.
먼바다에서 그물로 잡은 놈 들은 그물을 털어내는 과정에서
껍질이 죄다 벗겨지기 때문에 건조 후 가루도 풀풀 날리고 맛도 나쁘거든.
곱게? 말려진 멸치 내장 -일명 멸치 똥-을 일단 제거해 줘야 해.
좀 귀찮지만 그대로 쓰면 쓴맛이 은근히 배어 나오거든.
마른 프라이팬에 중불로 국물용 멸치를 달달 볶아서
바싹 건조를 해줘야 누린내가 나지 않지.
이때 좀 더 성의를 더한다면 냄비에 볶아진 멸치를 넣기 전에
거름 채를 써서 가볍게 털어주면 볶는 과정에서 생긴 가루들이
걸러져서 국물이 지저분해지는 걸 막을 수 있지.
때로 디포리-밴댕이-를 함께 쓰거나 따로 디포리 육수를 만들어도 좋지.
평상시 전복과 같은 어패류를 손질하고 남는 껍질은 냉동실에 두었다가
육수를 우려낼 때 함께 넣어주면 국물이 더 깊은 맛을 내는 법이지.
거기에 말린 갯가재 같은 것 을 추가하면 더더더 풍부한 맛이 생기기도 하고.
육수를 우려내는 온도는 처음엔 센 불로 뚜껑을 덮고 10분 정도
찬물 온도를 높여 주다가 물이 끓어오르면 중불로 약하게 하여
뚜껑을 열고 펄펄 끓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
뚜껑을 닫아 놓으면 비린 내음이 육수에 배어드는 경우가 있거든.
대략 15분 정도 이상이 넘으면 멸치가 부서지기 시작하니 멸치는 먼저 꺼내고.
처음 육수를 우릴 때 말린 다시마를 물에 가볍게 씻어 멸치와 함께 넣는데
다시마는 육수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면서 빼내 주는 게 좋지.
다시마를 오래 우리면 국물이 탁해지고 다시마 몸집만 팅팅 부풀어 오르니까.
거기에 크게 썰은 무와 (껍질 채로) 양파(역시 껍질 채로 흙만 씻는다)
대파는 뿌리째 넣고 야채 칸을 나뒹구는 미라화 된 채소류를 다 넣는 거지.
단, 채소류가 상하려고 하는 물컹한 단계라면 쓰지 말아야 해.
상황에 따라서 하루 전 불려 놓은 메주콩을 넣기도 하는데
그러면 구수한 맛과 단맛이 은근하게 육수에 추가되니 금상첨화 지.
만약 비린내가 잘 안 빠진다 싶으면 청주나 맛술을 한 스푼 넣어 끓이기도 하지.
이런 방식으로 다 합쳐 삼십 분 정도를 뭉근한 불에 끓여주면
멸치+채소 만능 육수가 생기게 되는데 빛깔이 은은한 보리차 빛을 띠면 최상이지.
요리 성격에 따라 위 재료 들을 각각 따로 육수를 내도 되지만,
나는 귀찮아서 해군 육수(멸치+다시마+해물류) 또는 육군 육수(양지 쇠고기)
두 가지 로만 육수를 만들어 사용하곤 해.
물론 육군 육수는 좀 다른 방식과 시간이 필요한데 그건 다음에 얘기하는 걸로.
완성된 육수를 식은 상태에서 거름망(베)에 걸러서 보관을 하는데
일주일 이내에 쓸 양이 넘친다면 냉동실 얼음 틀에 부어 얼려 보관하면 좋지.
오래가기도 하지만 맛이 변질되지 않으니까.
다만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내가 깨달은 진리? 가 있다면 모든 것 은 기다림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성급하게 높은 화력으로 순식간에 육수를 얻으려면 절대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
재료들을 넣고 빼는 순서가 있고, 화력을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조절하는
중용이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을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들을 통하여 얻은 육수를 대부분의 국물요리에 사용하면 아무런
조미료가 필요 없이 충분히 감칠맛과 깊은 맛으로 보답한다.
육수 자체에 국간장을 살짝 첨가해서 국수를 말아먹어도 좋고.
그래서, 육수는 기다림이다.
재료를 다듬고, 때론 말리고 때론 불려서 적절한 시기, 적당한 온도,
그리고 필요한 만큼을 기다려야 호박빛 육수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 멸치육수를 탐 하다-
먼바다 알섬 사이 너른 물길에
물속 미리내 인 양 떼 지어 노닐다가
은빛 살피듬을 어부에 낚이나니 슬퍼라
호랭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고 하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니
너는 죽어서 호박빛 그리움을 남기네
네 그리움 한 모금에 남해가 들어오고
네 그리움 두 모금에 동해가 넘실댄다
날랑 죽어본 들 남길 이름조차 없거늘
네가 녹여낸 그리움만 할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