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심야식당

심야 식당 3

내 맘대로

by 능선오름

심야 식당 3

육수를 만들어 놓더라도 기본적으로 일주일 이상은 냉장 보관을 않는 게 원칙이다.

일단 변질된 맛이 생기니까.

이게 싫으면 냉동보관을 하면 된다.

냉동으로 보관하면 한 달 정도를 둔다고 해도 그리 맛이 변하진 않으니까.

그렇긴 한데 육수를 한 달 보관할 정도면 그 식당은 문 닫아야지. 암.


잘 우려진 육수를 떠서 한 입 맛본다.

에퉤퉤 뭔 맛이람. 아무 맛없다.

당연하지. 간이 전혀 들어있지 않으니까.

약간의 바다 맛, 그리고 정말 설탕 눈곱만큼의 달달함.

이건 대파 뿌리와 양파에서 우러난 맛.

건강한 자연의 단 맛.

대신에 좀 덜 자극적인 맛.


만약 조금 더 품질 좋은 자연의 단 맛을 원할 때는 제철 무를 숭덩숭덩 잘라 넣어도 좋지.

아주 흐물흐물 해 질 때까지 뭉근하게 끓이면 이게 또 아주 은근한 단맛이 난다.

일단 무가 마르지 않은 무라야 맛도 좋다.

무 자체가 수분이 적은 마른 무는 아무래도 단맛이 덜 우러나는 법이지.

이제 육수가 기본 완성되면 대강 국물요리의 절반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기본 육수가 충실하면 거기에 뭐든 집어넣고 밑 간 만 약간 하면 훌륭한 맛이 나니까.


이따금 육수가 떨어지거나 했을 때는 약간의 사기를 친다.

시중에서 파는 참치액 이란 놈을 섞어 쓰는 거지.

참치액은 태국 근해에서 잡은 가다랑어를 현지 공장에서 단단하게 말린 훈연참치에, 국내산 다시마와 가을무ㆍ감초를 섞어 제조된다.

뭐 MSG는 안 쓴다니 믿어줘야지 어쩌겠는가.

요놈을 살짝 섞어 주면 국물이 아주 감칠맛이 나니 나름의 ‘약’ 되겠다.


양식 요리하는 셰프들이 맛을 낼 때 ‘약’으로 사용하는 송로버섯과 유사하다고 할까.

중양식 요리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치킨스톡이라고 할까.

대체로 치킨스톡이나 트러플 오일이 들어가서 맛이 안나는 법은 없으니 요. 알. 못들의 구원투수이긴 한데,

이게 어쩐지 뭔 요리를 해도 거기서 거기 같은 맛이 난다는 게 좀 문제다.

어떤 요리에도 적용이 가능한 강력한 한 방? 이 있다는 건 좋지만 뭔가....

엄마 도움받은 어린아이 같아서 말이다.


기본적으로 식당의 콘셉트는 딱히 없다.

서촌의 오랜 구옥들은 대부분 적산가옥이라 부르는 일제 식민지 치하 때 조성된 집들이 많다.

그건 당시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도시를 조성할 때 쓰던 방식의 도시계획에 의존해서 만든 것이라 구획 자체가 좀 특이하다.

완벽한 한식 한옥이 아니라는 이야기 다.

고샅길은 장정 세 명이 지나기 어려울 정도로 좁고, 북촌이나 남산처럼 양반들의 주거지가 아닌 서민층을 대상으로 다량 공급된 이른바 서민형 주택이라 좀 헐겁다.

하지만 그 덕택에 일제 시절부터 주거만이 아닌 다양한 장사를 겸하는 일종의 주상복합 형태이었기 때문에 나처럼 장사를 하기에 는 괜찮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테리어 랄 게 별로 없다.

오래된 목조를 그대로 드러내고, 거기에 현대식이랍시고 덕지덕지 붙여진 것 들을 제거하면 된다.

오래된 시멘트 벽과 저품질의 소나무들로 만들어진 대들보와 서까래, 기둥들이 민낯을 드러내게 만들고 오래된 타일 같은 것은 교체한다.

그러면 완벽한 한옥은 아니지만 뭔가 한옥스러운 느낌의 공간이 생기니, 이것이 콘셉트다.

메뉴도 마찬가지. 동네의 역사성에 걸맞게 딱히 한식도 일식도 양식도 아닌 절충식을 되는대로 내놓으면 그만이다. 이런 걸 요즘은 ‘퓨전’이라 부른다나.

기본은 가정식 백반 비스무리 하지만 전통과는 좀 거리가 먼, 그야말로 내 맘대로 메뉴 다.

뭐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대강대강 시작을 하기로 했던 것이니 손님이 왕이라는 건 나의 심야식당 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내 맘대로.

어차피 식당 아닌가.

제 아무리 인테리어가 훌륭하고 콘셉트가 좋으면 뭐하나.

음식이 기본적으로 맛이 없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식당 하면 맛이 우선이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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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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