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심야식당

심야 식당 8

졸지에 에그 베네딕트

by 능선오름


심야 식당 8

그 진상커플을 폐식재료 짜장으로 한 방 먹이는 중 다른 손님이 들어왔어.
응? 그런데 이 손님은 조금 범상치 않아 보여.
키가 훌쩍하니 크고, 머리가 조금 희끗희끗 하긴 한데,
트렌치코트를 입고 검정 뿔테 안경을 쓴 모양새가 ‘나 인텔리’라고 온몸으로 부르짖고 있는 듯 보여.
게다가 그 한쪽 겨드랑이에 원어판 타임을 끼고 있으니 화룡점정이지.

전반적으로 어디 파리나 뉴욕의 고색창연한 거리 카페에서 앞에 에스프레소 한 잔 올려놓곤,

얄따란 은테 안경 - 금테가 아니고 꼭 은테여야 해. 그래야 좀.... 세련되어 보이지 않나? -

을 끼고 천천히 뉴욕타임스 나 르몽드 같은 걸 읽고 있어야 어울릴 것 같은 남자.

만약 이 남자 앞에 설렁탕이나 김치 등뼈찜 같은 게 놓여 있다면 뭔가 안 맞을 거 같은 느낌.
게다가 술 한 잔 먹지 않은 듯 보이는 사람이 이런 뒷골목에 심야에 나타난 것은 드물어.
이런 사람이 내가 차려주는 가정식 백반을 먹을 리가 없을 듯한데.

좀 불안해.

가정적으론 안 보이는 이 멋진 노신사가 김치찌개를 시킬리는 없을 것 같고.
아니나 다를까. 이 양반 주문하는 품새 보소.


- 혹시,* 에그 베네딕트 가능합니까?

흠, 이거 참 별의별 손님이 다 있네.
서촌 뒷골목 허름한 가정식 백반 전문 집에 와서 에그 베네딕트 라.
뭐 그렇다고 굳이 거부할 생각은 없어.
이름이 무슨 가톨릭 성인 같아서 그렇지 내용이야 별게 없으니까.

뭐 다른 한식집에 가서 에그 베네딕트 운운하면 아마도 퇴짜가 아니라 수군거림을 듣겠지.

뭐라는 거야, 또는 멀쩡한 노친네가 치매가 일찍 왔나 봐 등등.

하지만 내가 또 요리 경력이랄 것도 없고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요리 종류들은 좀 아는 편이라.

물론 다 티브이 요리 방송과 인터넷에서 배운 게 전부이긴 하지만.


- 잉글리시 머핀은 없고요, 홀란다이즈 소스 가 없는데요.

퉁명스러운 내 대답에 이 노신사,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한 마디 거든다.


- 뭐 비슷하게 만들어 주면 됩니다. 호텔 레스토랑 아니니까.


아 놔, 그러게 호텔에서 시켜먹지 왜 이 후미진 골목에 나타나냐고.
존심 상하게스리. 그래도 뭐, 가정식으로 만든다면 못 할 것도 없지.

말하자면 내 맘대로 만들어도 좋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아마도.... 이 괴이한 이름의 음식을 최초에 만들었다는 그 주방장 방식으로 하면 그만이지.

일단 수란을 만들어야 하니, 펄펄 끓는 물에 계란을 껍질째 넣어서 십 초 정도 놔두는 거야.
그러고 끓는 물이 든 냄비를 불에서 빼내어 표면이 살짝 익은 계란을 조심스럽게 깨서 그 데워진 물속에 잘 넣어두는 거지.

끓는 물은 끈 상태로 말이야. 안 그러면 엉망진창 계란탕이 될지도 몰라.
그렇게 한 십분 정도 두면 속이 덜 익은 반숙 수란이 완성될 거야.

홀랜다이즈 소스..... 아 귀찮아.

귀찮지만 그게 없으면 아무래도 에그 베네딕트라고 하기엔 좀 거슬려.

빵이야 없는 잉글리시 머핀을 만들 순 없지만 소스야 뭐. 비슷하면 그만이지.

수프용 '루'를 만들 때처럼 일단 버터를 녹여야지. 루와 다른 점은 중탕으로 은근하게.

버터가 녹으면 꺼내고, 계란 노른자 두 개에 소금과 후추. 원래는 레몬즙을 넣어야지만 뭐 없으니 그냥 식초 조금 넣어서 녹은 버터를 부으며 거품기로 휘휘 저어주는 거야.

그러면 꾸덕한 느낌이 드는 소스가 만들어지는 거지.


그동안 아침에 먹다 남은 삼립 식빵을 토스트에 살짝 구워주는 거야.

어차피 머핀은 없고 호밀 빵도 안 키우니까.
아까 냉장고 속 폐처분할 식재료 중 남은 시든 시금치를 뜨거운 물에 굵은소금을 뿌리고 데쳐 줘.
다음엔 식초를 작은 팬에 넣고 버터를 넣고 약불로 녹이는 거야.
원래는 계란 노른자가 들어가야 한다지만 귀찮아.
그냥 대충 짝퉁 홀란다이즈 소스를 만드는 거지.
구워진 토스트 위에 수란을 얹고 소스를 끼얹어.
그 옆에 데친 시금치를 얹으면 그럴 듯 해.
이건 원래 에그 플로렌틴(eggsflorentine)이라 부르는 거지만,

어차피 냉장고 안에 먹다 남은 햄이 있으니 그것도 살짝 팬에 구워서 곁들이면 이론 상 에그 베네딕트가 완성된 거야.

완성된 에그 베네딕트를 노신사 앞 데스크에 올려 주었어.
맥주를 곁들인 노신사는 조심스럽게 나이프로 수란 가운데를 살며시 쪼갰어.
수란에서 샛노란 덜 익은 노른자가 꿀처럼 흘러나와서 바삭하게 구워진 식빵을 적셔주지.
그 위에 뿌려진 홀랜다이즈 소스와 어우러진 촉촉함이 빵과 시금치와 햄에 부드럽게 감겨드는 게 보여.

별건 아닌데 뭔가 브런치스러운 자태가 나오는 게 썩 괜찮은걸.
노신사는 그 촉촉하고 짭짤하며 새콤한 덩어리를 한 덩이 잘라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어.


- 훌륭해요. 사실 이 골목에서 에그 베네딕트를 먹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 못했소.

고맙습니다. 가끔은 외국에서 먹어 본 음식들이 생각이 나서요.


나는 그냥 씩 웃고 말았어.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음식이라고. 원 별.

그냥 좀 복잡한 샌드위치잖아.




수란의 꿈

황금빛으로 흐르는 길
진노랑 연못에 잠긴다
눈부시게 흰 설원의 가운데
뜨겁게 고인 그 마음
안타까이 달라붙는 애심
혓바늘에 촉촉이 감겨드는
진하디 진한 너의 관능
붉은 입술에 흘러넘치는
너의 진득한 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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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뉴스웨이 펌

미국 음식. 잉글리시 머핀 위에 햄 또는 베이컨, 그리고 수란을 얹고 그 위에 홀랜다이즈 소스를 뿌린다. 햄 대신 무엇을 곁들이는지에 따라 기본 조합은 조금씩 바뀐다.

유래는 불분명하나 대체로 뉴욕에서 기원한 두 가지 설에 초점을 맞춘다.

베네딕트라는 이름답게 창시자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보는 편이 일반적이다.

첫 번째 설의 주인공은 르뮤 엘 베네딕트(Lemuel Benedict)로, 1894년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the Waldorf-Astoria)에서 그가 한 주문으로 인해 이 음식이 탄생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밤 중에 진탕 마셔댄 술 때문에 숙취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어떻게든 속을 달래고자 특별한 요리를 요청했다.

이때 그가 요청한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버터를 바른 토스트에,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과 수란 2개, 홀란다이즈 소스 듬뿍.'

그런데 호텔 지배인인 오스카 스처키(Oscar Tschirky)가 르뮤 엘의 해장용 레시피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아서 호텔의 아침과 점심식사 메뉴에 해당 음식을 추가했다!

다만 약간의 변형을 거쳤는데 토스트는 잉글리시 머핀으로, 베이컨은 슬라이스 햄으로 대체했다. 더불어 음식을 '에그 베네딕트'라 명명했다.

이 일화는 1942년 12월 19일 자 뉴요커(New Yorker) 지에서 등장한 르뮤 엘 베네딕트와의 인터뷰에 따른 것이다.

두 번째 설의 주인공은 르그랑 베네딕트(Legrand Benedict)다. 당사자와의 직접 인터뷰로 생겨난 첫 번째 설과는 달리 관련 일화가 1970년 음식 잡지를 통해 뒤늦게 등장했다.

1860년, 그녀는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델 모니코스(Delmonico’s)라는 식당의 단골이었는데, 항상 먹던 메뉴에 질려서 새로운 요리를 요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요청을 받은 주방장 찰스 랜 호버(Charles Ranhofer)가 그녀를 위해 내놓은 요리가 바로 에그 베네딕트다.

당시 그는 이 요리에 베네딕트의 이름을 붙여 에그스 알라 베네딕트(Eggs a’ la Benedick)라 명명했고, 1894년에 집필한 '더 에피큐리언(The Epicurean)'에 레시피를 수록했다.#

- 나무 위키 지식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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