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심야식당

심야 식당 9

조금은 서러운 생일

by 능선오름



심야 식당 9

굳이 가정식 백반 집에 와서 시비를 건 두 진상을 빼곤 그럭저럭 괜찮았어.
대부분 인근 먹자골목에서 전작들을 거하게 한 잔씩 하고,
밤이 깊어가니 허기짐을 달래려 하다가 문득 가정식 백반이라는 간판을 보고,
뭔가 저렴하고? 대충 속 부대끼지 않게 때우려 들어오는 게 보통이니까.
그러다 들어와서 본인이 원하는 반찬 한두 가지 주문이 가능하다고 하니,
그럴 때는 꼭 진상들처럼 뭔가 더 복잡해 보이는 걸 주문하는 경우들이지.

가끔, 뭐든 시키면 대충 해준다고 간판 옆에 써놓은걸 지워버릴까도 싶어.

그런데 이게 뭐 떼돈 벌자고 연 식당도 아니고,

이래저래 손님 돈으로 안 해본 음식을 테이스팅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뭐 실패해도 가정식이라고 우기면 그만 일 테고,

성공하면 - 사실 손님은 처음 해본 거란 걸 모르겠지만 -

새로운 메뉴가 하나 늘고 내 맘대로 레시피가 생기는 거니 내가 손해 볼 건 없거든.

영업이 끝나갈 새벽 네 시쯤 들어온 손님이 있었어.
중년으로 보이는 여자였는데 몹시도 피곤해 보였지.
어깨는 추욱 처지고 눈 밑의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와서 보라색 숄이라도 두른 줄 알았다고.
그녀는 가게를 쓰윽 훑어보더니 사람도 별로 없는데 맨 구석 자리로 가서 앉았어.
낮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지.
그러더니 묻더군. 술 냄새는 나지 않았어.


- 사장님. 백반의 오늘의 국 은 뭔가요?
- 네, 오늘은 콩나물을 넣은 김치 국입니다.

그녀의 얼굴에 약간 실망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는 걸 보았어.


- 네.... 그렇군요. 혹시 다른 국 주문이 가능할까요?
- 네, 뭐 재료가 있는 경우에만 요.


일부러는 아니었는데 나도 새벽이 늦어가니 좀 피곤해서 시큰둥한 대답이 나왔지.

그렇잖아.

그녀에게 뭐 내가 얼마나 팔아먹는다고 말이야.

술을 마실 것 같지도 않은데.
내 답을 들은 그녀는 조금 고민을 하는 듯 보이더니 미역국이 가능하냐고 물었어.
나는 재료가 있을 것 같다고 했지.
그녀는 단출한 백반에 별도로 국을 주문하는 게 좀 미안했던지 변명처럼 말을 했어.


실은 길 건너 빌딩의 야간 청소를 하고 있는데,
이제 철야 청소작업이 끝나서 퇴근하는 길이라고.
요양원에 계시는 노모로부터 문자가 와 있는 걸 몰랐는데,

생일인데 미역국 먹었느냐 는 문자를 띄엄띄엄 보내신 걸 놓쳤다고.
그녀의 눈가에 물기가 어린것 같았어.

그리고 그 심정을 이해할 것 같기도 했지.
자기 손으로 끓여먹는 생일 미역국. 쓸쓸하잖아.
그러니까 굳이 이런 식당엘 들른 것이겠지.

게다가 일반적인 식당에서 미역국을 따로 끓여주진 않으니까.

이 새벽에 집에 가서 미역국을 끓이기도 그렇고.

누군가가 챙겨줄 사람이 있었다면 굳이 심야식당에 오진 않았겠지.


퉁명스레 대답한 게 미안해져서 나는 그녀의 고향을 물어보았고, 남쪽이라고 들었어.
왜 물었냐면,

보통 북쪽이 고향인 사람들은 소고기 미역국을 좋아하지만 남쪽은 대개 해산물 류로 미역국을 만들곤 하거든.

나는 잠시 기다리라 하고 옆에 있는 일식집으로 갔어.
일식집이라야 거기도 뭐 그저 그런 사이비 이긴 하지만.
그 집 주인장에게 전복 몇 개를 빌리기로 했지.
이제 전복 미역국을 끓여 볼 참이야.


생일

태어난 날을 선택할 수 없듯
죽을 날도 선택할 수 없지
앞당겨 강물에 뛰어들지 않는 한

이 세상 사람 칠십억 명이라는데
거기 한 사람 나고 지는 게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냐 하지만
그래도 한 사람은 온 우주
나 없는 세상은 의미 없는 역사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나는 나
내가 없는 세상은 의미 없지
일억 분의 일 확률로 태어난 나
축하할 만도 하지

그 어려운 확률을 뚫고
그 지난한 과정을 겪고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만드신
나의 신, 어머니께 건배



20190421_224351_139_1.jpg JTBC '요즘애들' 이미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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