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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Apr 19. 2024

잘못된 양육은 지금의 나를, 후천적 노력은 미래의 나를

생물 2

가끔 “자녀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잘못된 양육 방법”이나, “사랑받고 자란 아이의 특징”과 같이 부모의 양육과 자녀의 성격 간의 연관성을 다루는 영상들을 볼 때가 있다. 이런 영상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부모의 양육 태도는 자녀의 성격과 인성, 삶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한다. 그러니 아이를 제대로, 잘, 양육하라.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영상을 보고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낸다면, 영상은 그 의미를 더할 나위 없이 다 할 것이다. 하지만, 영상을 보는 사람 중에는 아직 어린 자녀가 없는 성인, 이미 불행한 양육 환경에서 자라 성인이 된 누군가도 있다. 그 누군가는 영상을 보고 서글프다. 아주 약간의 불쾌감도 느낀다.


나는 이미 이렇게 컸는데 어쩌란 말이야?”


낮은 자존감과 의존성, 부정적인 자기 인식 등으로 똘똘 뭉쳐 이미 양육의 시기를 지나친 성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를 길러준 부모에게 ‘나를 왜 그렇게 키웠냐’고 따져서 사과를 받아내면 좋을까? 운 좋게 사과를 받아낸다면 의미가 있는 것일까?


부모의 양육 태도가 자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떠들어대는 영상을 틀어 놓고 억울한 마음으로 샤워를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한참 서글픈 마음으로 샤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용기가 생겼다. 얼마 전에 수업 소재로 사용한 ‘신경 가소성’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못된 양육 환경으로 인해 비뚤어진 나라도, 후천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 내가 얼마만큼, 어떻게 노력하는가에 따라 나는 충분히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며,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신경 가소성이라는 놀라운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은 뇌 가소성이라고도 부르며, 우리의 경험이 신경계의 기능적 및 구조적 변형을 일으키는 현상이다(분자·세포생물학백과, NAVER). Neuroplasticity의 plasticity를 보면 성형 수술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와 플라스틱을 뜻하는 plastic이 생각날 것이다. 말 그대로 뇌 신경(neuro)이 유연하여 플라스틱처럼 성형 가능하다(plasticity)는 의미이다. 뇌는 환경의 입력에 따라 시냅스가 형성되거나 소멸되는 과정을 통해 신경망의 구조가 변화하기도 하고, 시냅스에서 일어나는 신호의 세기와 전송 효율이 변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병성 만성통증의 경우, 통증은 신경 가소성으로 인한 것일 수 있다. 종종 부상을 입었던 곳이 다 나았는데도 지속적으로 통증을 경험하는 만성통증을 앓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부상으로 인한 장기간의 통증이 대뇌 피질 수준에서 신경 가소성 반응을 유도하여 중추신경 감작을 일으킨 것이 한 원인이다. 실제로 만성통증은 뇌의 회백질 양을 감소시킨다(위키피디아). 쥐를 대상으로 운동피질 자극술(motor cortex stimulation, MCS)을 시행했더니, 대뇌 피질 신경세포의 시냅스 연결망이 변화하면서 통증이 줄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Myeounghoon Cha et al., 2020).


중요한 것은, 외부 환경에 따라 뇌 신경세포의 배열, 신호 강도 등을 조절하여 뇌의 행동 양상을 ‘후천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의 양육 환경은 초기 아동의 뇌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릴 때의 양육 환경이 성장 중인 아이의 뇌 구조에 영향을 미쳐 아이의 성격, 태도 등을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는 셀 수 없이 많다. 어린 시절 스트레스 등의 열악한 환경 조건에 노출된 아이는 정서적, 인지적 뇌 기능의 발달이 방해되어 훗날 정신 질환의 발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Emmanuel Matas et al., 2016).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아이의 애착 패턴 형성에 기여하는데, 이 애착 패턴은 시상하부, 편도체, 전두엽 피질 등의 뇌 영역을 통해 아이의 사회정서적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Sadiq Naveed et al., 2020). 물론 아이들이 양육 환경을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초기 아동 발달에서 트라우마는 뇌의 연결을 변화시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아동의 뇌는 신경 가소성의 작용을 통해 트라우마에 따른 부작용에 대처할 수 있다(Cioni G et al., 2011).


그렇다면 이렇게 결정된 아이의 뇌 구조는 성인이 되면 고정되어 전혀 바뀌지 않을까? 앞에서 봤듯이, 그렇지 않다. 단적인 예로, 장기간의 명상은 해마와 전두엽의 회백질 밀도를 증가시켜 주의력, 불안, 우울증, 두려움, 분노, 연민과 관련된 뇌 영역의 물리적 구조 및 신체 치유 능력에 변화를 가져온다고 한다(Vestergaard-Poulsen P et al., 2009), (Davidson RJ & Lutz A, 2008). 지속적인 유산소 운동은 여러 뇌 영역, 특히 해마와 전두엽의 회백질 양을 증가시켜 공간 기억과 실행 기능을 향상시킨다고도 한다(Erickson KI et al., 2014).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적절한 환경의 입력에 따라 뇌 구조는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니 부정적 양육 환경에서 뇌 구조가 부정적으로 정립되었더라도, 후천적으로 좋은 생각과 좋은 태도를 위해 노력하면 뇌 구조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 아직 양육 환경에 노출된 시기의 아동뿐 아니라 성인이라도 가능하다. 물론 노력은 좀 더 들겠지만, 그렇더라도 말이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나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첫째부모님(과거)을 원망하지 말자.

부모님이 나에게 최악의 양육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지난 과거이다. 부모님을 원망해서 사과를 받아내고 나면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이미 지난 과거는 바꿀 수 없다. 게다가 그 불행한 양육 환경마저도 부모님에게는 최선이었을 수 있다.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은 부모님과 나의 과거를 굳이 현재로 끌어 올려 다시 나를 상처 입히는 행위일 뿐이다. 이 상처가 다시 부정적인 생각이 되어 뇌 구조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둘째긍정적으로 생각하고나를 사랑하자.

긍정적인 생각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 계속 노력하면, 뇌 구조는 반드시 그렇게 바뀐다. 그것이 신경 가소성의 놀라운 능력이기 때문이다. 단, ‘의식적으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뇌 구조가 성공적으로 바뀌고 나면, 이제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나는 긍정적이고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애초에 ‘나’를 형성하는 것에 부모의 양육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고 있다. 부모의 양육이 생애의 핵심적인 시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사회와 친구들로부터의 경험, 책과 영상 같은 매체로부터 얻은 지혜,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 등 다양한 것들 역시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이미 지난 과거의 환경을 탓하지 말고, 지금의 환경을 바꿔 보자. 지금의 환경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바꿔 보자.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뇌 구조도 변하는데, 뇌의 영향 아래에 있는 우리의 성격과 가치관이 변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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