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학급 단톡방에 올렸다. 너희들이 뭐가 잘못됐고 내가 왜 기분 나쁜지를 줄줄이 읊은, 추석 인사를 빙자한 잔소리의 요지는 예의 바르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최근의 나는 반 아이들에게 굉장히 화가 많이 나 있었다. 해야 하는 일을 제때 하지 않고, 그래서 내가 빨리 하라고 시키면 짜증을 내고, 가끔은 선을 넘는 무례한 행동을 하는 일들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한 학기를 참아오며 상처도 많이 받고 무기력함도 많이 느꼈다. 내가 지도력이 없나, 내가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스타일인가, 아이들이 모두 나를 미워하나, 꼬리를 무는 자책들은 또 얼마나 나를 괴롭혔는지. 그걸 버티고 버티다 결국 오늘,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아이들의 잘못과 나의 분노로 시작한 메시지였는데도 그 와중에 이렇게 적으면 애들이 상처받으려나, 이건 너무 고압적인가, 또 한참을 고민하며 내용을 썼다 지우는 내 모습에 허탈한 웃음이 났다. 나는 뭘 두려워하고 있나. 아이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하는 것? 아이들이 날 미워하는 것? 슬프게도 후자인 것 같다.
카톡을 보내는 ‘화살표’ 버튼을 눌러놓고 나는 집을 나와 노래 주점으로 향했다. 술을 마셨고, 노래를 불렀다. 처음 술에서는 짠맛이 났고, 처음 노래에서는 울먹이는 소리가 났다. 한 시간 정도가 흘러서야 비로소 알코올향과 함께 시끌벅적한 노랫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던 것 같다.
집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보니, 반 아이들 몇몇이 죄송하다고 답장을 보내놓았다. 나는 반 아이들 전체에게 미움받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나의 정성 어린 잔소리가 무시받을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또 아니었나 보다, 하면서 속도 없이 배시시 웃음이 번졌다. 알고 보면 우리 반, 정말 착한 건지도 몰라. 사실은 되게 괜찮은 반이다? 사실은 우리 반이랑 나랑 사이좋을지도? 감정이 구름을 타고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또, 또 오바한다.
서운해했다가 행복해했다가. 오해하고 의심했다가 안심하고 설렜다가. 아주 혼자 북을 치고 장구를 친다.
이건 전부 생각이 문제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굳이 마음 깊은 곳까지 끌고 내려와서 내가 못나고 찌질하다는 증거로 들이댄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나 혼자 거기에 저의를 맘대로 갖다 붙이고 상처받는다. 혼을 냈기에 죄송하다 했을 뿐인데 사실 괜찮을지도? 하고 생각하는 것 좀 봐라. 복잡한 교사는 좀 단순해지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무례하게 행동하면 따끔하게 지도하면 되지. 아이들이 날 싫어하면 어쩌라고, 하면 되지. 뭔 존경을 받고 뭔 사랑을 받을라고. 피곤하게 눈치나 보면서. 그러지 말자. 교사로서 학교에서 행복하는 것, 교사로서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고 지키는 것, 그런 것들이 아이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고, 눈치 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훠얼씬.
장문의 메시지 마지막에는 ‘우리 모두 지금보다는 성장한 사람이 되어 만나자‘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그래, 성장해야 한다. 아이들 뿐 아니라 나도. 추석이 지나고 나면 내가 덜 집착하고, 덜 복잡하고, 덜 슬퍼하는 교사로 성장해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사실 오늘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회피 성향이 있는 나는 나의 불편한 감정을 툭 터놓으며 학생들과 대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 다시 쓴 글을 전송하고 나니, 그토록 어려웠던 일이 별 거 아닌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송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이렇게 쉬운 걸 여태 못하고 있었구나. 이제야 처음으로 이 쉬운 걸 해 보는구나. 이런 기념비적인 날을 글로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