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브라츠카 8번가의 카페, 그리고 버처샵
『오들레르의 제라늄 정원 』
01. 브라츠카 8번가의 카페, 그리고 버처샵
"오늘은 안심으로 드려볼까요? 오전에 막 좋은 고깃덩이가 들어왔답니다, 오들레르씨."
눈썹이 짙은 정육점 주인이 두꺼운 팔뚝으로 안심 덩이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백열등에 비친 탓인지 흰자위가 맑은 것인지 그 두 눈은 반짝여 보였다.
오들레르는 퇴근길 주 2회씩은 꼭 이 버쳐삽을 들러 등심을 사먹곤 했다. 그간 쌓인 친밀도와 함께 정육점 주인은 그에게 '단골' 타이틀을 수여했다.
오들레르는 이 곳의 등심이 무언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콕 집어 얘기하자면 '고깃덩이의 지방과 살코기가 적당한 비율로 조화롭게 어우러졌으며, 씹는 질감이 매우 만족스럽다‘ 정도랄까.
그는 잠시 멈칫하며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손가락을 접어가며 하나 둘 셋 무언가를 세는 듯 하더니 '월, 화, 수, 목...' 하고 읊조렸다. 이내 그는 씩씩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음, 그러면… 지난번 먹은 등심 500g, 안심 300g 같이 주시겠어요, 미하우씨?"
정육점 주인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보이며 이야기했다. "크, 역시 저희집 단골 손님께서는 맛있는 걸 드실 복이 있단 말이지요."
주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오들레르를 향해 찡긋 웃어보였다.
브라츠카 8번가에 위치한 이 버쳐샵은 인테리어가 매우 깔끔했다. 특히 천장에서부터 아래로 늘어뜨려진 전구 장식들은 가게를 들어서는 손님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양 벽면에는 각종 올리브유와 트러플 오일, 소금(크라쿠프 소금광산에서 들여온 소금들도 있었다), 통후추, 그리고 피클들(크림치즈가 채워진 파프리카 등)이 진열돼 있었다.
오들레르는 이 전구 장식들을 배경삼아 각종 야채 피클을 구경하고 있으면 어쩐지 고기가 더 금방 준비되어 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들어오면 늘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눈이 즐거웠다.
고깃덩이가 포장된 종이가방을 양손에 들고 가는 오들레르의 발걸음은 매우 가볍다. 그가 낀 은색 테의 안경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이나자, 각진 턱선과 콧대가 더욱 날렵해 보인다.
그는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모퉁이를 돌자 커피숍이 하나 나왔다.
저녁 시간에도 카페 내부는 불빛이 환하게 반짝였고, 널찍이 앉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모습이 보였다.
오들레르는 카페 통유리창 앞에서 이 모습을 잠시 멈춰서서 보더니, 곧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적당히 붐비는 카페의 카운터 너머로 젊은 바리스타 두 명이 열심히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안경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70대의 남자가 갓 구운 크로아상과 머핀을 오븐 트레이에서 꺼내어 진열장에 비치하고 있었다.
두꺼운 오븐용 장갑을 낀 그는 꽤 집중한 모습이었는데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어딘가 행복해 보이는 표정과 활기찬 분위기에 카페에 들어선 오들레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오들레르는 줄을 서서 따뜻한 라떼 한 잔과 함께 크로와상을 하나 포장했다.
두 바리스타가 분주하게 커피를 내리고 카페주인은 앞선 손님들이 주문한 빵을 접시에 담아내고 있었다.
커피를 기다리던 오들레르는 바로 뒤쪽에 좌석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는 잠시 앉아 포근한 감성을 느끼고 싶어졌다.
곧 주문한 커피와 크로와상이 나오자 이를 받아들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카페 주인을 향해 물었다.
"저, 혹시 20분만 앉아있다 가도 괜찮을까요?"
카페 주인은 인심 좋게 웃으며 바로 답해주었다.
"당연하죠, 우리 단골 손님."
오들레르는 미소로 화답하고는 잠시 편안하게 앉아 커피를 두세모금 마셨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는 최대한 무시하기로 마음먹은 듯 보였다.
이십분쯤 지났을까, 약간의 허기짐을 느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페 안은 여전히 여유롭고, 조용한 대화가 오갔으며, 커피를 내리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렸다. 오들레르는 아주 천천히 문을 열고 카페를 나왔다.
시계는 저녁 7시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들레르는 콧노래를 부르며 주차장으로 가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그의 퇴근길은 늘 기분이 좋았다.
서른 둘의 오들레르는 잘나가는 프로젝트 매니저다.
그는 나름 바르샤바의 번화가라 불리우는 '브라츠카 거리'의 끝에 살고 있다. 이 거리에는 베이커리와 카페, 그리고 레스토랑이 즐비하게 들어서있다. 화려한 조명과 붐비는 사람들로 그의 퇴근길은 늘 반짝인다.
매일 아침 운전해서 20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며, 일터에서 나름 인정받고 업무도 익숙해진 덕에 직장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다.
섭섭치 않은 연봉과 7년간 일하며 모은 월급으로 오들레르는 펀드와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옷장에는 평소 좋아하던 이탈리아, 미국 브랜드의 옷들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