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슈테이른의 추억과 감성, 그리고 나의 고찰
02. 슈테이른의 추억과 감성, 그리고 나의 고찰
열 세 살에 처음 가 본 슈테이른은 참 이상한 곳이었다.
자연이 푸르고 온통 초록과 노랑, 그리고 파랑이 가득한 나라였다.
내가 있던 홈스테이 가정에는 어린 아이 둘을 둔 사십 대 초반의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맞벌이를 하면서도 늘 5시 이전에 귀가했으며 집안일은 규칙을 정해 나누어서 했다.
한 사람이 밥을 하면 다른 한 사람은 설거지를 하거나, 식사 준비를 함께 하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나를 온통 감쌌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읽었던 수필중 한 구절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가정을 함께 꾸려 나가자고 약속했다.’
이 구절의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이 이런 장면일까?
가정을 함께 꾸려 나간다는 그 말뜻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던걸까?
나는 안다르에 계신 우리 어머니, 더 나아가 어머니들의 삶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해답이 없는 질문들에 이런 저런 나만의 고찰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홈스테이 가정의 가족들은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늘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또 내일은 무얼 하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주말이 오면 우리는 곤돌라 썰매를 타러가곤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가면, 낭떠러지 절벽 옆으로 썰매를 타는 길이 굽이굽이 굽어져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길을 아래로 내려다보면 아슬아슬 오싹하면서도 정말이지 멋있는 절경이 따로 없었다. 안다르에서만 있었다면 절대로 보지 못했을 풍경이었다.
슈테이른에서는 주로 감자와 당근, 고기 요리를 먹었는데 맛이 꽤 괜찮았다. 어느 날은 구운 닭다리 넓적살에 감자, 당근, 콩을 볶아 소스를 곁들여 먹었고, 종종 구운 돼지 등심이나 목살에 야채를 곁들여 먹기도 했다.
바쁜 아침에는 시리얼과 우유를 먹기도 하고, 빵을 먹기도 했다. 안다르에서 주식으로 먹던 쌀과 보리가 이따금씩 생각났지만, 크게 그립지는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레오가 잘 지내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가족들이 그리울 때면 나는 메일을 쓰곤 했다.
어느 날 우리는 곤돌라 썰매가 아닌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러 갔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실내 스케이트 장의 거대한 규모, 그리고 곳곳에 켜진 밝은 화려한 등불이었다.
우리는 늦은 밤까지 스케이트를 탔고, 중간에는 달콤한 와플도 간식으로 먹었다.
스케이트를 원없이 타고나서 슈테이른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 라이트...’ 유명한 가수의 노래와 함께 나는 차창 밖으로 나를 밝게 비추던 달빛을 바라보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보는 달빛은 가로등 불빛과 함께 환하게 반짝였다. 나는 처음 느껴보는 이 감성이 왠지 모르게 좋다고 생각했다. 마치 원래 자주 느꼈던 감성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느 늦은 가을, 열 세살의 나는 그렇게 달리는 차 안에서 슈테이른의 저무는 밤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