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국의 축소
90년대 중국의 축소판 ‘홍등’
음악과 드라마가 결합한 내러티브 형식으로, 가족의 이야기와 사회의 현상을 비판하는 영화 장르를 ‘멜로드라마(melodrama)’라고 말한다. 영화 <홍등>은 멜로드라마 장르의 영화이다. 삐뚤어진 가족의 이야기와 그래야만 했던 중국 봉건의 사회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은 1920년대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중국 사회에서 ‘피해자’일 수밖에 없던 ‘신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대학을 진학은 물론이거니와 음악 분야 있어 재능이 있음에도 여자이고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명문가에 시집가는 것뿐이다. 이 시대 중국의 여성은 남성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했고. 부모의 뜻은 거절하기 어려웠다. 남성중심주의적인 시대상은 영화 내에서도 묘사가 된다. 바람을 피우다가 걸린 셋째 부인은 남편의 뜻을 거역했기에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홍련 이외에 그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반발하지 않는다. 남자의 말을 어긴 여자는 ‘죽음’이 당연한 존재로 치부된다.여성은 남성들에 의해 철저하게 구속되고 속박당한다.
<홍등>에 나타난 문의 의미 : 서크의 프레이밍
멜로드라마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더글러스 서크의 관습적인 기법의 하나가 ‘프레이밍’이다. (구조물을 이용해 화면 안에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든다) 이 영화 속에는 ‘frame’이 굉장히 빈번하게 등장한다. 미장센 측면에서 ‘사각형’의 오브제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프레임 안에 들어있는 여성들의 모습은 꼭 볼 수 있을 것이다. 네모난 문에 여인들은 줄지어 서 있다. 네모난 침대 틀 안에 여성은 덩그러니 놓여있다. 틀 안에 갇혀있는 여성에게 역동적인 행동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여자 하인의 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프레이밍을 활용해 처량한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양쪽 지붕은 하인 여성이 갇혀있는 쇠창살처럼 보인다. 중국 사회에서 가장 아래의 계층인 여성이자 하인인 사람의 죽음은 고립되어 있으며 그녀를 위해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이 침대에 있는 여성의 모습이다. 이들은 ‘침대’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행동한다. 침대 외에도 문을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곳의 여성들은 판옵티콘 감옥에 사는 죄수와 같다. 문은 애정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이고 답답한 감시를 위한 쇠창살처럼 보인다.
경제적 해방으로 보는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특징
멜로드라마 장르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신데렐라 스토리 판타지’와 사회적 리얼리티가 담겨있다. 주인공 송련은 집안 가족들과 대립하는 결혼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 영화 속 여성 주인공은 철저히 도구화되고 있다. 당시 가난한 가문이 명문 가문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원치 않은 시집’을 가는 것이다. 이후 영화의 내러티브 상에서도 여성은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한 도구로 어겨진다. 오프닝씬은 대사와 공리의 연기만으로 중국 사회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제가 원하는 사람과 혼인할 순 있나요?
여인의 운명이 다 그렇잖아요
송련의 얼굴만 보여주고, 엄마의 목소리는 보이스오버로 들려온다. 몇 마디 대사와 공리의 눈물연기로 그녀가 처한 상황이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사회와 가정에 저항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처지의 여성 모습을 나타낸다. 클로즈업 구도로 그녀의 감정에 온전히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성을 위해서 ‘여자’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에서 불쌍한 여인들끼리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운다. 송련은 명문 가문의 세계에서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 그 가정에서 벗어난다. 그녀 혼자 가정을 뒤집고 사회를 바꾸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그저 떠나는 게 송련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리를 뜨는 것이며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 이외의 저항은 어렵다.
영화 <홍등> 속에는 서크의 멜로드라마 장르 문법이 곳곳에 녹아있다. 기존에 로맨틱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만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가족의 이야기 속에 우리의 사회가 담겨있을 때 진정한 멜로 드라마장르의 의미가 완성된다.
[참고]
Thomas Schatz, 할리우드 장르, 컬처룩, 2014,p.427~500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08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