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오 데시카의 <자전거도둑>에 나타난 사회의 변두리
<자전거 도둑>은 21세기의 대부분 관객들이 좋아하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화려한 볼거리, 혹은 반전 있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라인과는 거리가 멀다. 까이에뒤씨네마를 창간한 영화 비평가 앙드레 바쟁은 이 영화를 “가장 뛰어난 공산주의 운동”이라고 평가했을 정도이다. 구체적으로 앙드레 바쟁은 "이 작품은 순수 영화의 첫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배우도 없고 이야기도 없고 연출도 없다. 이것은 영화가 이제 더 이상 완벽한 미학적 환상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아울러 "확실히 지난 10년 동안 제작된 공산주의적 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가치 있는 공산주의적 영화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그 사회적 의미를 추상화시키더라도 그 뜻을 간직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이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리얼리즘’ 영화로, 1940년대 이탈리아의 비참한 현실을 영화 안에 그대로 녹여냈다. 특히 노동자와 빈민계층 등과 같은 소외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당시 이탈리아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였다. 즉, 리얼리즘 영화답게 영화 속에 어떤 드라마틱한 요소를 첨가하기보다는 주변에 있을 법한 파편적인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안토니오는 운이 좋게 포스터 붙이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전거가 필요했다. 그는 자전거가 없었지만 일을 뺏기지 않기 위해 당장 자전거를 구하겠다고 하고 아내에게 이 상황을 전달한다. 결국 아내는 결혼할 때 마련한 침대보를 팔아 전당포에 맡겨둔 자전거를 되찾는다. 하지만 브루노와 함께 새로운 일을 하던 도중 안토니오는 자전거를 도둑 맞는다. 그는 경찰을 찾아갔지만, 자전거를 찾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며 그를 돌려보낸다. 다음날 친구 바이오코와 함께 광장을 샅샅이 찾아보지만 결국 자전거를 찾지 못한다. 그러다 안토니오는 한 노인과 거래를 하고 있는 자전거 도둑을 발견하고 그를 뒤쫓지만 놓쳐버린다. 이후 안토니오는 도둑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인을 따라가지만 노인도 교회에서 놓쳐버린다. 예민해진 안토니오는 아들 브루노의 물음에 뺨을 때리고 아들과 사이가 멀어진다. 어느 날 안토니오는 아이가 물에 빠졌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갔는데 브루노가 아님을 알고 안도하고, 브루노와 함께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자전거를 훔친 청년을 만나고 그를 추궁하지만 증거 없이 고발한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 안토니오는 절망감을 안고 거리를 헤매다가 브루노를 전차에 타라고 보낸 후 타인의 자전거를 훔친다. 하지만 그는 얼마 도망치지 못해 붙잡혀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는다. 자전거를 도둑 맞은 사람은 그를 풀어주고, 브루노는 울기만 한다. 두 사람은 정처 없이 로마의 인파 속으로 들어간다.
플롯 이외에도 이 영화의 몇가지 장면을 통해 리얼리즘의 두드러지는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첫번째로 살펴 볼 장면은 네오리얼리즘 영화에서는 롱테이크와 트래킹과 같은 카메라 기법을 활용한 연출을 볼 수 있다. 특히 안토니오가 친구 바이오코와 함께 광활한 비토리오 광장에서 자전거를 찾는 장면에서 카메라 테크닉을 활용해 시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안토니오 무리를 미디엄샷으로 보여주면서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는 팔로잉하였다. 동시에 중경에서는 자전거 시장에서 바삐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주었으며, 시장 씬에서는 안토니오를 중심으로 트래킹을 하다가 안토니오와 바이오코가 떠나고 혼자 남은 아이로 카메라를 옮기는 롱테이크 촬영법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이 영화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처럼 인위적이고 대조적인 조명 없이, 자연광을 활용해 ‘네오리얼리즘’ 스타일을 연출하였다.
두 번째로 눈여겨 볼 시퀀스는 점쟁이를 찾아가는 시퀀스이다. 안토니오는 두 번 점쟁이를 찾아간다. 처음에는 안토니오의 부인 마리아가 남편이 직장을 얻지 못해 그에 대한 불안감으로 점쟁이를 찾아가고, 나중에는 남편이 직장을 얻게 되자 마리아가 복채를 내려고 다시 찾아가려고 한다. 이때 안토니오는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며 마리아를 말린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자전거를 잃어버린 이후 자기발로 직접 점쟁이를 찾아간다. 점쟁이는 ‘자전거를 찾거나 영영 못 찾는다’는 뻔한 이야기만 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점쟁이’는 전형적인 ‘사기꾼’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감성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에 점쟁이 또는 종교나 미신에 의존하는 모습은 현재의 삶속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힘든시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믿일 수 있는 무언가에 기대기 마련이다. 우리가 종교를 믿고 때로는 사이비까지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처럼 이 영화는 그들의 경제적 곤경에 대한 유일한 탈출구가 미신이나 점쟁이임을 연출하고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안토니오가 자전거를 찾지 못한 채 파도에 휩쓸리듯 로마의 거리를 걸어가는 것이다. 감독은 이 시퀀스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력한 소시민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즉, 쓸쓸한 가장의 뒷모습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발걸음에서 ‘돈’으로 만들어진 문제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다. 생계 수단을 잃은 가장의 어깨는 무겁고, 긴장되어 보이는 아이의 얼굴은 가엽기만 하다.
안토니오는 ‘리치’라는 이름과는 정반대로 ‘rich’한 삶을 살기에는 시대가 따라주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노력해도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은 쉽지 않다.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주인공은 절박하고, 자전거를 되찾기 위해 맞서 싸운다.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자전거를 되찾고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테지만, 이야기는 불완전하게 마무리된다. 모두가 피해자가 된 상황을 담담하게 묘사했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참고자료]
이상우.(2015).삶의 조건으로서의 자전거 - 영화 <자전거 도둑>.월간교통,p56-57.
David Bordwell, Kristin Thompson 『영화예술』, 주진숙, 이용관 옮김, 지필미디어; 지필출판사, P.583~585 , 2011
신강호, 『영화사를 바꾼 명장면으로 영화 읽기』,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 -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다”, 브런치, 2021년03월04일수정, 2021년03월30일 접속, https://brunch.co.kr/@daisyjd8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