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잡기
요즘 나는 숨 쉬는 것에 공을 들인다.
달리기를 할 때도 들숨 날숨을 코로 하려고 노력한다.
평상시에는 몇 초에 끝나지만 숨을 아랫배까지 담았다가 천천히 토해내기도 한다.
게다가, 잠을 잘 때도 숨 쉬기에 신경 쓴다.
잠들기 전 입에다 테이프를 붙이고 잔다.
약국에서 코숨 테이프를 구입해서 4개월째 붙이고 잔다.
2~3주는 어색했으나, 지금은 입안의 건조함을 방지해서 그런지 입안이 건강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숨'이라는 존재는 당연 우리를 살게 하는 무의식 중에서도 눌러지는 자동화 버튼이다.
뼈와 살 속에 파고들어 몸을 움직이게 하고 나의 정신을 이끌어 낸다.
그런 존재에 나는 무심했다.
잘 때 입을 벌리고 자면 나는 왠지 편했다. 침대 위에서 몸을 완전히 이완하는 동작에 턱이 벌어지는 순간이 있다. 굳이 입을 다물지 않고 그냥 눈 감을 때 그 편안함은 극치이다. 잠든 뒷일은 모른다.
다만 아침에 목이 칼칼해지거나, 입안이 다 마른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아마도 벌리고 온밤을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 입에다 숨테이프를 붙이기로 했다. 처음에는 자다가 무의식주에 비벼서 뗐다. 잠이 깰 정도일 때는 손가락으로 꾹 눌려 더 붙였다. 답답한 만큼 고쳐지겠지 하면서 버텨냈다. 4개월째 인 지금은 안정감이다. 누우면 복식으로 숨을 가다듬으니까 잡생각이 줄었다. 금세 잠들어 버린다. 게다가 남편이 말을 시키면 댓구를 못해서 좋다. 대답을 하면 오히려 성의 있게 받아준다. 말을 빠르게 할 수 없으니까 정성스럽게 웅얼거리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입안은 촉촉하다. 나는 입안이 건조해야 입안 세균이 죽는 줄 알고 있었다. 촉촉하면 세균의 양분이 되는 게 아닐까? 근거 없는 추측으로 입 벌리고 자는 습관이 생겼다.
'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건 나 마음의 흐름을 따라가는데서 시작됐다.
내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려면 내 숨이 고요해야 했다. 허걱거리는 숨 속에서는 봐도 보이지 않는 흙탕물 같았다.
심호흡으로 깊이 어깨에 힘을 뺄 때 마음이 어떤 상태로 흘러가고 있는지 보였다.
내 마음을 알아채기까지 거쳐지는 과정이다. 의식해서 숨을 쉬면 얽힌 갈고리 같은 문제가 분리가 된다.
"이건 이렇게 생겼으니 이렇되고, 저건 놓여있는 자리가 한계가 됐네, 내가 흥분하고 있구나" 하며 이런 것들이 보인다.
문제상황에서 '현명하게 봐야지, 긍정적으로 분석적으로 해결해야지' 같은 의식은 없었다.
다만 숨을 깊고 천천히 쉬고 있을 뿐이었다. 숨쉬기를 연습했다고 해야겠다.
우연히 보는 동물의 털 고르기는 평화롭다.
나도 숨 고르기를 하면 평온해진다.
멈춤이 되어서 그럴까?
숨 고르기는 흥분된 나의 반응속도도 조절하여 화가 쉽게 일지 않는다.
거울을 보고 입술을 다물고 입꼬리를 올리며 숨 고르기를 시도해 본다.
이쁘다.
내가.
오늘은 숨을 잘 쉬는 이쁜 하루를 보내봐야겠다.
(조금 있다 일어날 남편에게 이쁘게 숨 고르기를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