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관계를 만드는 방식에 대하여
여행을 하거나 외국에서 지낼 때면,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때마다 늘 비슷한 감각을 느낀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상대의 나이나 지위를 거의 의식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영어에는 높임말이 없다. 문장의 형태가 사람의 서열을 나누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같은 문장 구조를 쓰고, 같은 어조로 질문하고, 같은 방식으로 농담을 건넨다. 그래서인지 대화는 빠르게 평평해진다. 나이와 국적, 직업이 잠시 뒤로 물러나고, 지금 이 순간의 ‘사람’만 남는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세 친구처럼 웃으며 이야기하게 되는 이유다.
반면에 한국어는 대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계산을 요구한다. 상대의 나이는 몇 살인지, 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지금 우리가 놓인 관계는 어떤 위치인지. 여기서 말하는 위치는 단순한 직급만이 아니다. 내가 손님인지, 판매자인지, 직원인지, 상사인지. 상황과 권력의 방향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문장의 끝 하나를 고르기 위해 머릿속에서 작은 회의가 열린다.
물론 영어에도 sir나 ma’am 같은 존칭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예의의 장치에 가깝지, 문장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는 아니다. 한국어의 촘촘한 높임말 체계와 비교하면 훨씬 느슨하다. 그래서 영어로 대화할 때는 말이 먼저 나오고, 생각이 뒤따라온다. 한국어에서는 종종 생각이 말을 붙잡는다.
이 차이는 대화의 자유도에도 영향을 준다. 어떤 표현은 너무 무례해 보일까 망설이게 되고, 어떤 질문은 선을 넘는 것 같아 삼키게 된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관계의 틀을 함께 만들어버린다. 우리는 말투 안에서 서로의 거리를 재고,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
영어로 이야기할 때 느끼는 작은 해방감은, 어쩌면 언어가 잠시 나를 ‘위치’에서 풀어주는 순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구의 후배도, 누구의 상사도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 서 있을 수 있는 시간. 그 평평한 공간에서 나는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가벼워진다.
물론 한국어의 섬세함과 배려의 구조가 가진 아름다움도 분명하다. 다만 가끔은, 나이를 묻지 않아도 되는 대화, 관계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문장이 그리워진다. 언어 하나가 사람 사이의 공기를 이렇게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