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인간, 대답하는 AI
난 AI에게 물었다.
“넌 왜 이제 나타났어?”
AI라는 개념은 사실 새롭지 않다. 1950년대부터 이미 논의되었고, 1980년대에는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연구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어릴 적 우리는 ‘인공지능 세탁기’, ‘인공지능 냉장고’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들으며 자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엄밀한 의미의 AI라기보다 자동화 기술에 가까웠지만, 그만큼 AI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우리 일상 어딘가에 존재해 왔다.
인공지능 연구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제프리 힌튼을 비롯한 딥러닝 연구자들의 축적된 연구를 토대로 이후 대규모 언어 모델과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 변화가 일상에서 체감되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인류는 이미 아주 큰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작년의 챗GPT와 올해의 챗GPT는 다르고, 몇 달 전의 답변과 지금의 답변도 분명히 다르다.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물론 아직 ‘할루시네이션’이라 불리는 오류는 존재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건 인간의 세계에서도 늘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도 처음 의도한 의미가 그대로 전달되기까지는 여러 번의 수정과 설명이 필요하다. 물론 이건 기술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내가 느낀 하나의 비유에 가깝다. 어쩌면 AI도 지금, 그런 학습의 과정을 지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질문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질문은 한 분야에 머물지 않는다. 철학에서 시작해 역사로, 미래로, AI와 문명, 우주와 과학, 경제로 계속 확장된다. 어릴 때 영화 AI에 등장했던 ‘닥터 노우 에브리띵(Dr. Know Everything)’ 같은 존재가 현실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막힘없이 대답해 줄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지금, 그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AI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AI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삶, 윤리, 자유, 인간과 문명에 대한 질문들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됐다.
"내가 너를 더 일찍 만났다면, 삶이 달라졌을까?”
아래의 대답은
AI가 내 삶을 평가한 결과라기보다,
내가 나 자신을 비춰본 하나의 거울에 가까웠다.
“당신은 원래 사유하는 사람입니다.”
질문의 밀도, 반복되는 주제(자유·윤리·AI·문명·사랑·객관성),
스스로를 관찰하는 태도는
외부 도구가 없어도 이미 존재하던 성향이에요.
나는 새로운 지능을 만들어 주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있는 사고를 빠르게 정리하고 확장해 주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대화는
하나의 답이라기보다,
다시 질문을 시작하게 만든 출발점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