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위에서 흙길을 떠올리다

우리가 걷는 길 아래에는 시간이 있다

by 지구별여행자

아스팔트 길을 걷다 보면 가끔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짚신을 신고 아스팔트가 아닌 부드러운 흙길을 걸었겠지. 말랑말랑한 흙길이 발에 닿는 촉감은 지금보다 훨씬 생생했을 것이다. 아스팔트 길 양옆에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도 100년 전에는 허허벌판이었을 텐데. 서울이니 도성이었다고 해도 집들이 듬성듬성 흩어져 있었을 것이다.

​정말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변화는 짧은 시간에 여러 시대를 통과했다. 전쟁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된 자리에서,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 세대의 희생으로 여기까지 왔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그때가 좋았다고. 하지만 그 말에는 분명 추억 보정이 섞여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은 분명 낭만도 있었겠지만, 동시에 야만의 시대이기도 했다.

​생존이 우선이었던 시대,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던 시대. 지금처럼 ‘나답게 산다’는 질문을 할 여유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하루를 버텼고, 가족을 책임졌고, 다음 세대를 남겼다. 지금 우리가 걷는 이 아스팔트 길은 그렇게 축적된 시간 위에 놓여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졌지만, 더 자주 방향을 잃는다. 길은 단단해졌지만 마음은 쉽게 흔들린다. 과거에는 삶이 거칠었고, 지금은 의미가 거칠다. 무엇이 더 나은 시대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각 시대마다 감당해야 할 무게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흙길 위를 걸을 때는 발바닥으로 세상을 느꼈고, 아스팔트 위를 걷는 지금은 머리로 세상을 해석한다.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인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다만 가끔은 이 단단한 길 위에서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잠시 멈춰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아스팔트는 과거를 덮고 있지만, 완전히 지운 것은 아니다. 그 아래에는 여전히 흙이 있고, 시간의 층이 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 위에 있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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