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은 호의에서 생기지 않는다
2편 : 계속된 실험과 선 긋기
A 단톡방에서 나는 침묵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보았다. 불편함을 말하지 않았을 때, 관계는 유지됐지만 내 기준은 사라졌다.
B 단톡방은 운동과 친목을 중심으로 한 모임이었다.
여기에서도 나는 처음엔 여전히 ‘착한 사람 페르소나’를 유지했다. 그곳에서 만난 e는 동성이었고, 나이도 비슷했다. 처음엔 친절했고, 오래 모임에 있었던 사람 같았다. 대화도 잘 통했고 ‘좋은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판단은 오래가지 않았다.
e와의 개인적인 약속은 번번이 지켜지지 않았다.
두 번을 만났는데, 매번 약속 시간에 크게 늦었다.
이상했던 점은 다른 모임의 약속은 비교적 잘 지킨다는 사실이었다.
e는 내가 가입한 또 다른 C 단톡방에도 있었다.
두 모임에서 같은 닉네임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e와 만났을 때, 나는 읽고 있던 책을 가져갔던 적이 있었는데 e는 그 책을 펴서 사진을 찍더니 그 책 사진을
C 단톡방에 올렸다. 마치 자신이 읽은 책인 것처럼.
내 닉네임은 C 단톡방에서는 달랐기 때문에 e는 내가 그 방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위의 일들로 불편함을 느꼈지만, 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e는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남자와 내가 가까워질까 봐 경계하다가 결국, 무례한 행동을 나에게 했다.
그 장면을 보며 들었던 감정은 분노보다 실망이었다.
사람에 대한 실망은 언제나 조용히 찾아온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명확히 판단했다.
이건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경계 침범이라는 것을.
그래서 착한 사람 페르소나는 접어두고 e에게 그동안의 행동을 차분히 짚어 말했다.
그리고 그 관계는 그 자리에서 끝났다.
C 단톡방은 독서 모임이었다.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의식적으로 페르소나를 조절하지 않았다. 독서 모임이라는 성격 덕분에
토론을 통해 원래의 내 성향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다만, 앞선 두 모임의 경험 탓인지 내가 조금 예민해져 있던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날 독서 모임이 끝난 뒤, 멤버들과 간단한 보드게임을 했다. 팀을 나눠 진행했는데
내 실수로 우리 팀이 졌다. 그때 같은 팀이었던 남자 f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탓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날 단톡방에서도 나 때문에 졌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때, 나는 바로 말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는 기분이 나쁘다고. f는 즉시 사과했다.
어쩌면 그에게는 친해지고 싶다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 만난 사이에서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나에게는 불쾌한 방식이었다.
기분 나쁘다고 말한 순간 단톡방의 공기는 잠시 식었지만 바로 이어진 f의 사과 이후 대화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경계를 분명히 세우자 관계는 오히려 단순해졌다.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그때 확신했다.
경계는 관계를 망치는 게 아니라,
관계를 정렬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