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 페르소나는 왜 실패하는가? 3

존중은 호의에서 생기지 않는다

by 지구별여행자

3편 : 착한 사람을 그만두기로 했다 - 페르소나와 경계의 학습


B 단톡방은 참여를 거의 안 해서 탈퇴한 뒤 가입한 D 단톡방에서는 애초부터 원래의 내 성격에 가까운 모습으로 가기로 했다.

물론 처음에는 ‘뉴비’였기 때문에 다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긴 했다. 그런데 역시나, 조금이라도 완만해지면 바로 선을 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대응했다.

그러자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선을 넘지 않았다.


다만 그 대응 방식이 항상 매끄럽지는 않았다.

나는 스무스하기보다는, 다소 강하게 반응하는 쪽에 가까웠다.


원래 나는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는 성격은 아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회복되는 편이다. 그래서 완전히 편한 관계가 아니면, 모임 자체가 쉽게 소진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상대의 말보다 상대가 허용하는 경계를 읽는다.


‘착한 사람 페르소나’는 도덕적 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경계 신호를 보내지 않는 상태에 가까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상대에게 해석의 권한을 넘기는 일이었다.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중 스스로를 악의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단지 이렇게 학습했을 뿐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경계가 명확하면 사람들은 비교적 빠르게 행동을 조정했다. 한 번 제지당한 이후에는, 선을 넘는 일이 반복되지 않았다.


착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과 존중받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존중은 호의에서 생기지 않는다.


존중은 경계에서 시작된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희석시키는 방식으로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기로 했다.


관찰자는 될 수 있지만,

침묵하는 관찰자는 되지 않기로 했다.


그 침묵이 결국 나를 지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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