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된다’는 말은 언제나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문제를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

by 지구별여행자

대학생 때의 일이다.
과학을 좋아해서 교양 수업으로 과학 관련 강의를 하나 들었다. 과목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바탕으로 한 수업이었다.

이기적 유전자는 정말 재미있었고,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수업 역시 흥미로웠다.
그런데 어느 날 출석을 부르는데 내 이름이 없었다.

이상해서 학교 행정실에 찾아가 물었다. 직원은 내 이름이 등록되어 있다고 했고, 그냥 계속 수업을 들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학기가 끝나고 성적표를 확인했을 때, 낯선 성적이 적혀 있었다. C인지 D인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성적이었다.

나는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고, 리포트도 성실히 제출했다. 이해할 수 없어서 강사님께 메일을 보냈다.
강사님은 내게 A+를 줬다고 답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알고 보니 같은 이름의 수업이 두 개 있었고, 나는 다른 수업에 등록된 상태로 이 수업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강사님은 당시 미국에 계셨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도와주시겠다고 했지만,
행정실에서는 성적 정정이 불가능하다는 답만 돌아왔다.


그때 나는 아마 많이 속상했을 것이다.

억울하다는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몰랐을 만큼.


지금도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그 당시의 나는 얼마나 많이 스스로를 탓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너무 순진했다. 왜 안 되는지, 정말 방법은 없는지, 조금 더 묻지도, 따지지도 못했다.

그저 ‘안 된다’는 말 앞에서 멈춰 섰다.

지금의 나라면 달랐을 것이다. 이유를 묻고, 절차를 확인하고, 부당함을 분명하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렸고, 이런 일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억울함은 성적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문제가 분명히 있었는데도, 그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다.

이러한 크고 작은 경험들이 쌓여 나는 조금씩 바뀌어 갔을지도 모른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면, 그 감각을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안 된다는 말 앞에서 멈추기보다, 왜 안 되는지 묻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이유를 아는 것은 권리이고, 부당함을 말하는 것은 무례가 아니라는 것도, 그때의 경험이 뒤늦게 가르쳐주었다.


지금도 그 일이 생생히 기억나는 건 아마 그때 정말 많이 억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억울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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