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돈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금융 자본가들은 사람들에게 빚을 권한다. 그래서 현대사회를 '빚 권하는 사회'라고도 한다. 금융 자본가들이 대출을 권하는 것은 그게 그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축 금리는 엄청 낮췄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축 대신에 대출을 받아 주식도 사고, 펀드도 사고, 차 사고, 집 사고, 명품도 사고, 해외여행도 다닌다. 폼나게 살려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잡아야 하니 들어가는 사교육비도 끝이 없다.
현대 사회에서 소비는 미덕이다. 청년들에게 내일은 없다는 말이 상식처럼 들리고, 그래서 YOLO(You Only Live Once) 족도 등장한다. 소비는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기에, 최근에 소비한 것을 SNS에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한다.
하지만 이런 삶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지나친 낭비와 허세의 삶을 살다가 자칫 삶이 나락으로 갈 것 같은 불안감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저축을 한번 해보려 한다. 그런데 저축도 쉽지 않다. 기존의 생활 습관을 바꾸기도 어렵지만, 돈 쓸 일이 끊임없이 생긴다.
저축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도 안된다. 그냥 은행에 묻어두면 자산 가치는 매년 몇 퍼센트씩 떨어지니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투자 상품도 결국은 '상품'이라는 것이다. 주식을 사든, 펀드를 사든, 채권을 사든, 부동산을 사든, 금을 사든 이것도 결국은 소비의 일종이다.
우리는 결국 ‘빚 권하는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소비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비유하자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 틀에서 벗어나려면 쳇바퀴가 스스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또는, 비행기를 이륙시키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들지만, 일단 성층권까지만 올라가면 가장 적은 에너지로 순항이 가능한 것처럼, 자신의 경제 상태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쳇바퀴가 스스로 돌게 하거나 비행기를 성층권에 올리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또 하나의 시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 돈을 내라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이런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을 몇 권 읽다 보니, 내 나름대로 특징이 보인다.
가장 먼저는, 이미 부자가 된 사람들의 노하우를 소개한 책이다. 성공한 자신을 롤모델로 삼아 도전해 보라는 말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의 투자 실천기를 소개한 책들이 많이 팔린다. 또는 '나는 ~을 해서 몇십억을 벌었다'와 같은 자극적인 책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책들, 신통한 것들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건 마치 서울대나 의대 입시에 성공한 학생들의 노하우를 담은 책들과 비슷하다. '나처럼 하면 서울대나 의대를 간다'는 것인데, 사람마다 역량이 다르고 살아온 길이 다르기에 모두에게 그대로 적용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꾸준히 팔린다. 이런 책을 보고 자기 자녀들의 공부 로드맵을 만드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강남 대치동의 성공 신화를 담은 책들이 꾸준히 팔린다. 다만, 강남 대치동에는 정신과 병원도 많고, 소리 없이 묻힌 사람들의 실패담은 훨씬 더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들, 그리고 성공한 투자가들의 비법을 담은 책들은 그냥 동기 유발 정도로 참고만 해야지, 그대로 따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다음으로는, 부자가 되는 일반적인 원리와 원칙을 소개하는 책일 것이다. 앞서 소개한 『돈의 심리학』같은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아주 많고 또 꾸준히 팔리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고전 중의 하나는 '보도 섀퍼'의 『돈』과 같은 책일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책 한 두 권 읽고 말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 책들의 공통점은 대개 다음과 같았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밑천을 만들기 위해 저축을 하고, 그 돈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버티라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또한 빚을 지면서까지 무모하게 소비하거나 투기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자기 계발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성실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부류의 책들은, 공부를 잘하려면 어릴 적부터 독서 습관을 들여야 한다거나, 독서를 통해 문해력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공부를 잘 하게 된다는 말과 유사한 논리이다. 사실 이런 말이 전혀 틀리지 않는다. 공부는 대개 타고나거나 어릴 적에 길러진 기초적인 역량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부자가 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금수저로 타고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으라고 아껴서 투자 자금을 만든 다음 성공적으로 투자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나 많은 돈이 풀려도, 돈은 몇몇 있는 사람에게만 간다. 경제적 부는 1% 혹은 10%의 사람들이 독점적으로 가져가는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
아무리 공부의 비법을 말하는 책이 많아도, 전교 1등은 1, 2명이 돌아가면서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솔직히 전교 1등이 '공부의 비법'과 같은 책을 보고 공부를 잘하게 되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전교 10등 내외에서 왔다갔다 하는 아이들은, 좀 더 공부를 잘하고 싶은 욕심에 이런 책들 한 번은 읽어도 좋을 것 같기는 하다.
셋째는, 앞의 방법들과는 다른 접근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솔직히 이 방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는다. 단순하게 말하면, 욕심을 줄이라는 것이나 부의 기준을 바꾸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100억을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1000만 원만 있어도 부자라고 여기면 그게 부자라는 식이다.
쉽게 동의되지는 않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학교 공부로 말하면, 경쟁이 아닌 진정한 배움을 찾자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소위 말하는 자연 속의 대안학교가 그런 곳이다.
사실 이런 책들은 많이 나오지도 않고, 나와도 잘 팔리지 않는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은 책 하나를 소개한다. 바로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를 부정하거나, 돈에 대해 초월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책의 저자는 책머리에서 이 책을 집필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머야? 문제의식에 풍부한 사례. 거기다 구체적인 대안까지. 그럼 본인이 쓸 것이지. 왜 나더러 쓰라는 거야? 돈이야 억수로 좋아하지만, 경제에 대해선 완전 문외한인 내가 왜? 하지만 이런 투덜거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문탁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공부의 달인'에 '사랑과 연애의 달인'을 썼으니까, 이젠 '돈의 달인'을 써야쥐! 그렇다. 이 책은 돈을 엄청나게 좋아하지만 경제에 문외한이었던 작가가, 혼자서 그리고 함께 공동체 안에서 공부하면서 쓴 책이다. 책 p.5
나도 돈 엄청나게 좋아한다. 그런데 문외한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나 같은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고, 공감도 잘 된다. 하지만 방법론에 있어서는 역시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과 이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나간다. ‘돈 벌어서 뭐 할 건데?’라는 질문에 답이 막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잉태하는 순간부터 돈을 쏟아붓는다.
온갖 진찰 명목으로, 가상의 위험을 이유로 돈이 뭉텅뭉텅 들어간다. 출생 후에는 아기뿐 아니라 산모에게 들어가는 돈도 장난이 아니다. 아기가 4살, 5살이 되면 사교육비가 들어가기 시작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등록금이 들어간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많은 졸업생들은 빚쟁이가 되었는데, 요행히 직장을 잡으면 다행이지만 수많은 사람은 백수가 되기도 한다.
직장을 잡아도 마찬가지다. 집 사야지, 부모 모셔야지, 다시 아이 낳아 길러야지. ‘다람쥐 쳇바퀴’라는 말이 그래서 정확한 우리들의 삶이다. 이게 자본주의 시스템의 실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에서 제대로 사는 법은 잘 모르겠고, 그래서 다들 한방에 끝내자고 로또를 산다. 빚을 내서 무리한 투기를 하기도 한다. 오늘 하루를 사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빚과 불안은 정비례로 늘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과 우울은 다시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심리학적인 이론들도 많다. 내면이 강하지 않은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들이 심리적인 방어기제로 과소비를 한다는 말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저자의 말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구절이 하나 있었다.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돈부터 벌지 말고 해병대나 명상센터에 가서 마음수련을 먼저 하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딱 맞는 소리다. 해병대나 명상센터는 좀 “머시기”하지만, 돈을 벌기 전에 마음을 컨트롤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은 백 번 지당하다. 그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돈이 잘 벌리지도 않고, 갑자기 돈이 생긴다 해도 우왕좌왕하다가 인생 볼장 다 보게 된다. 부동산 졸부나 로또 당첨자들이 대개 이런 코스를 밟곤 한다. 책 p.75
뭐,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단 돈벼락이나 한 번 맞아보자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긴 하다. 하지만 돈벼락을 맞아도 그건 일시적인 부자이지, 장기적인 부자는 아니라는 말이다. 진짜 부자는 '버는 것보다 지키는 데 유능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럼 도대체 이런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책의 저자는 코뮤니타스(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솔직히 좀 뜬구름 잡는 듯한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특히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교환하고 증여하는 공동체 삶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일리가 없지는 않으니,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이는 앞에서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가 ‘스타디움 라이트(공동체 집중력)’를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지식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공부하고, 공부한 내용을 '교육통화'로 만들어 서로 교환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교환하여 생긴 가치, 즉 돈이나 새로운 가치를 다시 나누며 살다 보면, 엄청난 부자는 아닐지라도 아주 적은 돈으로도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돈의 달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밥과 친구를 같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노하우가 하나 있다. 공부를 하면 된다! 공부는 사람을 부르고, 다시 밥을 부른다. 쉽게 말하면 공부하면 밥이 생긴다는 뜻. 공부해서 취직을 하고, 그래서 월급을 타면 그걸로 밥이 생긴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공부는 그 자체로 밥을 불러온다! 우리 연구실의 저력도 다름 아닌 밥이다! 지식인 공동체가 밥부터 내세우는 게 좀 머시기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우리 연구실엔 사람이 많다. 책 p.183
물론 이런 방법은 주류의 경제 논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비판도 많을 수밖에 없다. 꼭 서울대나 의대 못 가본 것들이 서울대 욕하고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거라고, 자격지심이 발동하는 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사실 큰돈 한번 못 만져본 사람이 '부자 별거 아니여!'라고 하는 것은 공허한 소리일 수 있다. 솔로몬처럼 최고의 부와 권력를 소유했던 사람이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해야 인생의 진리처럼 들리는 것이다.
하지만 다 그렇다고 쳐도, 누구나 다 부자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서울대는 전국 상위 1%는 되어야 입학할 수 있다고 했다. 부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99%가 루저가 되어 1%의 부자만 바라보는 세상은 그리 행복한 사회는 아닐 것이다. 99%의 평범한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치열한 경쟁이 판치는 학교를 떠나 자연 속에서 지내며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는 것처럼, 돈 경쟁에서도 남들과 다른 목소리가 있음을 한 번쯤은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다시 말하지만, 100억을 가지고도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통장에 천만 원만 있어도 행복한 마음의 부자도 있는 법이다. 동의는 잘 되지 않지만 그렇다는 말이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등에서 얻은 몇 가지 교훈을 정리하고 마친다.
첫째는, 자본주의에서 부자가 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러니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으려면 자본주의를 잘 이해해야 한다.
셋째는, 최소한 빚까지 져가면서 무모한 소비나 투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넷째는, 여유가 있으면 꾸준히 저축을 하자는 것이다. 틈틈히 경제공부 외에 자신의 가치를 키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역량은 돈을 버는 또다른 '생산수단'이 될 수 있다.
다섯째는,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마음의 여유와 나눔의 정신을 갖는 일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흥부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흥부는 아무리 가난해도 제비 다리를 고쳐주는 마음의 부자였다. 그리고 제비가 준 행운으로 부자가 된 다음에 가장 먼저 한 일은 놀부 형님을 불러 돈을 나눠준 것이다.
여섯째는, 부자의 기준은 다양하다는 것이다. 목표가 큰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100억이 있어도 돈에 얽매이고, 어떤 이는 먹고 살만한 돈만 있어도 마음의 자유를 누린다.
이 책 저 책 할 것 없이 누구나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 부자가 되어야 하는 진짜 이유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많은 돈을 벌어서, 경제적 자유와 마음의 자유까지 모두 누리면 좋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