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도구 : 문학 5 문학의 힘, 독서의 힘
문학은 생각보다 힘이 쎄다.
문학은 인간이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시간을 초월하여 과거와 미래를 오가게 하고, 공간을 뛰어넘어 현실에서는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이끌어 준다. 이러한 문학적 상상력의 힘은 ‘쟁장설화’로 분류되는 ‘두꺼비 이야기 설화’나 고소설 『두껍전』에서 잘 드러난다.
다양한 이본이 존재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동일하다. 가장 못생긴 두꺼비가 연장자로 대접받아 상석에 오르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가 높은 자리에 오른 이유는 단순히 나이가 많다거나 외적인 권위 때문이 아니다. 두꺼비는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줄 아는, 문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두꺼비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마치 실제로 경험한 것처럼 풀어놓는다. 그는 거대한 산맥을 넘고, 깊은 바다 속을 누비고, 하늘의 황궁까지 다녀온 듯 말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실제 몸으로 다녀온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서사적 창조물이다. 그는 과장과 허구를 교묘하게 섞어 듣는 이들이 놀라워하도록 만든다.
단순한 허풍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문학적 기법과 닮아 있다. 문학에서 허구는 단순한 거짓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 더 깊은 진실을 탐구하는 도구이다. 두꺼비가 펼치는 이야기 속 과장은 현실을 초월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며, 이를 듣는 자들에게 새로운 사고의 영역을 열어 준다.
결국, 이러한 이야기는 단순한 우화가 아니다.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과 함께, 책을 통해 얻은 지혜와 지식이야말로 진정한 권위를 형성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두꺼비는 직접 경험하지 않았어도 가장 많은 곳을 다녀왔고, 가장 많은 삶을 살아본 존재로 인식된다. 현실에서는 가장 짧은 수명을 가진 동물이지만, 그의 상상력은 그를 누구보다 오래 산 존재로 만든다. 이는 문학이 가진 힘과 닮아 있다.
문학은 보편적인 진실이 무엇인지, 강력하게 경험하게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힘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비롯한 작품들은 국가와 사회는 물론 개인이 행사하는 뿌리 깊은 폭력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조명한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았으며, 그의 작품은 역사적 비극을 기록하는 동시에 그것이 현재에도 어떻게 반복될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국가폭력이 개인과 가정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계엄이 초래하는 공포와 절망을 생생히 전했다.
그런데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에서 실제로 계엄이 발동되었다. 사람들은 이미 『소년이 온다』를 통해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시민을 탄압하는지, 그 폭력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기는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바 있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이 폭력의 희생자였다면 어떠했을까 상상했다. 그리고 몸서리치는 아픔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등장인물들의 절망과 고통에 공감했던 사람들은, 막상 계엄령이 선포되었을 때 단순한 공포를 넘어 강한 저항의식이 생길 수 있었다고 본다. ‘서울의 봄’과 같은 영화도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계엄이나 쿠데타와 같은 사건이 얼마나 비참한 역사를 만들 수 있는지 알려주기도 하지만, 이런 소설들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 폭력에 저항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문학이 전하는 이러한 보편적 진실이 누구에게나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전쟁을 실제로 경험하지 않으려면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우리는 이 전쟁을 영상과 뉴스로만 접하며, 마치 영화의 장면이나 게임 속 전투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과거 걸프전 당시에도, 미국이 사용하는 최첨단 무기의 영상을 본 사람들은 실제 전쟁을 마치 한 편의 영화와 드라마처럼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어떻게 게임이나 영화와 같을 수 있겠는가? 총알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장의 참혹함을 우리는 실감할 수 있을까?
6.25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 역시 전쟁의 잔혹함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전쟁이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참혹하고 잔인한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문학을 통해 이해한다. 예를 들어, 최인훈의 『광장』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분단, 6.25 전쟁, 그리고 포로수용소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작품 속 주인공 이명준이 겪는 고뇌와 방황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분단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나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같은 소설도 전쟁이 한 가족과 사회에 남긴 상처를 조명하며, 이데올로기의 폭력이 인간을 얼마나 쉽게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전쟁이 다시 이 땅에서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영상이나 뉴스가 전쟁을 화려하게 보여줄 수는 있어도, 문학의 스토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만든다. 문학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독자로 하여금 전쟁을 살아 있는 현실로 경험하게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과 막아야 할 것을 일깨운다. 문학이 곧 역사이고, 문학이 곧 저항이며, 문학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인 이유이다.
문학을 통해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통해 전쟁의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지 않으면, 현실에서 전쟁을 경험하게 될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
가장 오래 산 사람은 가장 오래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가장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루소 『에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