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도구 : 역사 1 역사와 개인
문학과 역사
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역사를 함께 배워야 하는 순간이 많다. 특히 고전문학은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역사적 맥락 안에서 작품을 보면 감추어졌던 내용들이 훤히 드러날 때가 많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다.
문학 비평 방법 중 외재적 접근법에 해당하는 반영론적 관점은 작품이 쓰인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만 온전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작품은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라, 그것이 탄생한 시대의 사회·문화·정치적 요소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문학과 역사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매우 유사한 역할을 한다. 문학이 인간의 삶을 허구적으로 재현한다면, 역사는 인간이 남긴 사실적 기록과 발자취를 담아낸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다양한 삶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는 것처럼, 역사를 통해선 과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배우고, 그 경험을 토대로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통찰을 얻는다.
문학과 역사는 인문학, 곧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단이다.
나의 역사 찾아가기
최근에 집안에서 전해져 온 고소설 『창선감의록(昌善感義錄)』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타지에 살던 집안의 형님이 고서를 정리하던 중에 나에게 몇 권 건네주신 것 중에 들어 있었다.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창선감의록(昌善感義錄)』의 가장 오래된 한문 필사본으로서 자료적 가치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창선감의록(昌善感義錄)』은 수능에 출제된 이후 최근에 학계에 많이 알려진 고소설로 이번에 학회지에 싣기 위해 번역과 연구를 동시에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번역이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한문소설 번역도 이제는 나같은 초보자도 쉽게 도전할만 하다. 다 알다시피 인공지능 번역기가 원체 탁월하다.
그런데 이 소설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이 되는 명나라 가정황제 시기의 역사뿐만 아니라, 이 작품이 조선에서 필사된 1846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한다. 작품이 탄생한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문학 해석의 중요한 과정이 되는 이유다.
또한 1846년 필사 전후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집안의 내력도 알게 된 것은 매우 행복한 경험이었다.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족보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그동안 묻혀있던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족보 이야기 하고, 뿌리 찾기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 같지만 그 공부를 통해 얻게 된 가문의 역사는 최소한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자부심이 되었다.
태종 이방원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다가왔으며 그의 막내 아들 익녕군에 대해서도 다시 살펴 보았다. 익녕군의 4대손인 오리 이원익의 평전도 다시 읽었다. 임진왜란의 극복과 대동법의 시행, 이순신을 구한 이야기, 인조에게 관감당을 하사받은 청백리 이야기, 40년 이상을 영의정으로 지내며 이룬 업적을 보았다.
1800년 정조 사후 전후로 우리 집안과 청양 출신의 채제공 집안이 맺은 인연도 흥미로웠다. 우리 집안은 구봉산 여우재를 사이에 두고 채제공의 가문과 교류하면서 혼인관계로 맺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채제공이 다산 정약용을 청양의 '금정찰방'으로 보낸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그가 당시에 쓴 '금정일록'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었다.
한편, 최근 작고한 외삼촌은 정약용과 같은 집안인 '나주 정씨'로 우리나라의 '마지막 전기수'였다. 외삼촌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이셨는데, 나에게도 소설 낭독을 한 번 배워보라고 권유하셨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소설 낭독인가 했고, 그때는 사실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지금은 외삼촌이 건네 주신 딱지본 『사씨남정기』가 덩그러니 하나 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동안 엄마나 외삼촌으로부터 들었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까지 하나 둘 맥락이 이어지며 집안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창선감의록』과 『사씨남정기』가 나에게 온 것이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나는 솔직히 그동안 나와 우리 집안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았다. 그렇기에 한 권의 고소설을 시작으로 잊고 있었던 집안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에 어떤 소명을 느끼고 있다.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보물섬이다.
이렇듯 역사는 나의 뿌리를 알게 하는 소중한 도구이다. 나의 뿌리를 통해 나의 자존감을 높이고 이전보다 조금 더 당당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한다고 하면, 그동안 대부분은 교과서에서 배우는 왕조 중심의 역사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처럼 개인의 역사로부터 역사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최근에는 집안의 역사는 물론 개인의 역사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의 출생과 이름, 태몽에 담긴 의미, 가족관계와 형제지간의 일들을 되돌아보면서 나의 성장 과정이 미친 영향력을 추억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역사만이 아니라 심리학의 영역까지 포함하는 일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이런 것이 인문학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나의 본질을 찾아가며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인문학으로서 역사의 쓸모
인류가 역사를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문명의 발전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역사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인과적으로 연결된 ‘스토리(Story)’이다. 그 ‘스토리’에 ‘Hi’라고 인사를 건네면 ‘History’가 된다. 즉, 역사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Story)를 확장해 나갈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이, 자기의 역사(History)가 없는 사람이나 민족, 국가도 미래를 잃게 된다.
조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은 「도산십이곡」에서 역사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옛 성현도 나를 못 보았고 나도 옛 성현을 못 뵙네
옛 성현을 못 봬도 그분들이 행하시던 길이 앞에 있네
가던 길이 앞에 있으니 아니 가고 어찌 하겠는가?
또한, 역사학자 E.H. Carr는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라고 말했다. 이는 역사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단지 과거의 사건을 아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흐름에서부터 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현재를 깊이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인문학적 통찰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개인으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