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도구 : 역사 2 역사와 교양
교양을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줄여서 ‘지대넓얕’은 정통적인 역사서는 아니다. 책의 표지에는 "한 권으로 편안하게 즐기는 지식 여행서"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 파트로 시작하여, 이를 바탕으로 경제, 정치, 사회, 윤리가 인류사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설명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새로운 시각이 열리는 듯한 경험이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경제, 사회, 정치의 핵심 개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그동안 막연했던 수많은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생산수단'의 유무에 따라 계급이 나뉘고, '자본주의'의 등장에 따라 봉건제가 무너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수요보다 공급이 늘 과잉인 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제국주의가 등장하고, 이로 인해 1차, 2차 세계대전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이르는 경제 체제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막연했던 보수와 진보의 개념도 정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분단상황으로 인해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상당히 뒤틀리고 왜곡되어 있는 상황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전체주의란 무엇이며, 히틀러와 같은 파시스트 지도자가 어떻게 등장하는가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개념이 정리되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고, 사회와 정치 상황을 이전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넓어졌다.
윤리 파트에서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룬 문제가 거의 비슷하게 나온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함께 읽기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많은 분들이 한번은 읽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혹시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이다.
역사의 흐름 안에서 정치, 정치, 사회, 윤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인과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물론, 이 책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또한, 마르크스 이론에 치우쳐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학교에서 수행평가 도서로 지정했을 때 "공산주의 책을 읽힌다"며 항의 전화가 걸려온 적도 있다.
왜 이런 항의가 들어왔을까 생각해보니, 책의 가장 앞 부분에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이 등장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것만을 가지고 공산주의 책이라고 단정한 것이라면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전체적으로 현재의 정치 체제가 지나치게 보수화 되어 있다는 인식과 함께, 그렇게 보수화된 이유까지 설명하는 것을 보면, 작가가 다분히 진보적인 성향임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진보적인 생각을 갖는다고 바로 공산주의로 몰아가는 사고방식은 정말 말도 안되는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우리 나라의 분단 현실이 만들어 낸 괴물과 같은 사고체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사고 방식이 오히려 김정은 같은 독재자를 만들고 히틀러 같은 파시스트를 만드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새는 좌우의 두 날개로 난다.
겸손한 마음과 열린 사고를 갖는 게 교양
독자들은 책을 쓴 작가의 생각을 그대로 수용하는 존재가 아니다. 독서는 자신이 가진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이며, 자신과 다른 시각을 접하는 것이 곧 사고의 확장을 의미한다. 타인의 주장을 읽지 않고서는 그들을 이해하거나 설득할 수도 없다. 오히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외면하는 태도가 극단적 사고를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유튜브 알고리즘이 가지는 문제점이 많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결과, 다양한 시각을 경험하기보다 자신이 속한 정보의 울타리 안에서만 사고하게 되는 편향성이 더욱 강화된다.
따라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겸손하게 귀 기울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논리적인 이론으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질 때에 상대방도 내 의견을 들어줄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현대 우리 사회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논리적인 이론으로 무장하여 남을 설득하려고만 하니 문제다. 남을 논리적으로 싸워 이기면 자기 기분은 좋겠지만, 타인은 오히려 더 마음의 문을 닫는다.
지대넓얕의 작가 채사장은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교양이라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자신이 얕은 지식의 소유자임을 인정하는 겸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겸손한 한마음으로 보다 더 넓게 배우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제가 혹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혹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태도를 갖는 것이 교양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양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태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