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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분실

인문학 독서모임 - 책읽기 2

by 양심냉장고

작가소개

김초엽(金草葉은 대한민국의 SF 소설가이다.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초엽은 포항공대 화학과 출신으로 과학자이자 소설가이다. 그의 소설은 SF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과학적인 소재가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독자로 하여금 어떤 지식을 얻는 듯한 만족감을 준다. 소설을 읽으며 스토리가 주는 재미 이상으로 지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읽고 생각한 것들


우리는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는가?

BCI (brain–computer interface), 마인드 업로딩과 같은 기술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기술이 발전하여, 실제로 인간의 마인드를 다운로드한다면, 그건 인간의 영혼인가? 아니면 그냥 고도로 축적된 정보 체계일 뿐인가?

이런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세계관이다. 세계관 없이 이런 주제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자칫 논리적인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유물론적인 세계관 안에서는 인간의 영혼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계관 안에서는 고도로 축적된 정보는 특정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정신'과 같은 사고체계를 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특이점'을 생각하면 된다. 인간도 진화의 과정에서 어느 순간 '정신'이라는 사고 체계 즉 자기를 인지하고 성찰하는 사고체계를 갖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와 같은 세계관을 인정한다면, 고도로 발전된 기술로 인간의 뇌 안에 있는 정보를 그대로 다운로딩 한 것은 인간의 정신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정보를 저장하는 매체만 달라진 것이다. 저장 장치가 인간의 뇌에서 반도체로 넘어간 것 뿐이다.


반면, 유신론적 세계관 안에서는 신이 만든 영혼과 인간이 만든 정보는 다른 것이다. 아무리 고도로 축적된 정보라도 그건 그냥 프로그램의 일종일 뿐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발전하면, 인간을 99.9999%까지 흉내내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인간의 영혼과는 다른 것이다. 복제품은 복제품일 뿐이다. 인간을 뛰어넘는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로 나는 유신론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기에, 아무리 인간의 뇌를 스캔해서 정보를 다운로드 한다고 해도 영혼을 가진 완벽한 인격체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단순한 정보의 집합체가 아니다.


하지만 두 세계관 모두 동일하게 가정하는 것은 있다. 조만간에 인간과 닮은 휴머노이드의 출현이나 소설에서 가정하는 마인드의 스캔이나 접속은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소설은 그러한 미래의 세계를 가정하고 시작한다.


우리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

엄마가 실종되었다. 정확하게는 엄마의 마인드가 실종된 것이다. 인간의 마인드를 저장하는 일명 '도서관'에서 엄마의 마인드와 접속할 수 있는 인덱스가 삭제된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엄마는 너무 찾기 쉬운 사람이었다. 엄마의 공간은 늘 집이라는 공간 하나로 제약되어 있었다. 엄마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지냈다. 그게 자발적인 의지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원래 꿈은 책을 만들고 출판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임신을 하고, 종이책의 몰락과 함께 회사에서 잘렸다. 그리고 출산을 하고, 산후 우울증에 걸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엄마의 꿈은 사라져버렸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아래, 엄마는 자기의 꿈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못하고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어정쩡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힘들고 우울한 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엄마는 병원에 입원을 하고, 가족들은 엄마를 하나 둘 잊고 살았다. 죽은 엄마는 하나의 공간에 박제가 되었다. 도서관에 기록된지 3년째, 마인드접속기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존재였지만, 아버지는 한번 만나보고 비겁하게 인덱스를 지워버렸고 아들과 딸도 처음부터 잊어버렸다. 그리고 본인들이 필요할 때만 만나면 된다.

본인이 필요하지 않으면 접속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그렇게 맘이 편한대로 잊고 사는 존재가 엄마였다. 그런 엄마였는데, 지민은 아이를 임신하고 엄마를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엄마를 한 번 만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만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한다. 그런데 엄마가 분실되었다고 한다.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자 그제서야 더욱 간절하게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소설에서 가족들은 엄마를 잊고 산다. 그런데 엄마가 진짜 실종되었다고 하니 엄마를 간절히 찾아 나선다. 하지만 엄마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것이나 몸이 실종되어 만나지 못하는 것이나, 아니면 아예 돌아가시는 것이나 무엇이 다를까? 정말 다른 것인가?


나는 엄마가 살아계실 때 이미 엄마를 자주 잃어버렸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엄마의 존재를 자주 잊었다.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해서 찾기 전에 나는 까맣게 엄마의 존재를 잊고 살았었다.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분이다. 내가 필요하면 그곳에 있었던 분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고, 나의 엄마도 나와 똑같이 엄마가 필요한 분이었는데, 나는 엄마가 한없이 강하고 외로워도 잘 버티는 분으로 믿고 살았다. 자식들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였다.


엄마와 딸의 관계

'지민'과 '유민'에게 김은하라는 엄마는 애증의 관계이다. 지민에게 엄마는 산후 우울증으로 자녀양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여인이다. 자녀를 방치하고 사랑을 주지 못한 나약하고 무책임한 존재이다. 물론 그렇게 된 것이 자기의 책임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때도 있다. 힘들어 하는 엄마를 위해 착한 딸이 되려고 애쓴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일찍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자신이 더 잘하면 가족이 유지될 거라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러한 노력의 줄이 끊어지고, 엄마와 단절하는 길을 택한다. 엄마가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분노할 때 지민은 엄마와의 단절을 결정했을 것이다.

지민의 엄마는 딸을 사랑했을까?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본능일까? 한편, 지민의 엄마는 딸에게 딸 이상의 관계를 요구한 것은 아닌가? 오히려 딸에게 위로를 받으려고 한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에게 착한 딸이 되고자 했으나 중도에 포기한 딸은 정말 잘못한 것인가?

엄마는 딸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투사하여 딸의 인생에 개입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하기도 한다. 자신의 불행과 불안을 나눠 가질 존재로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딸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이하기도 한다. 그럼 딸들은 어릴 적에는 그런 부모님의 마음에 들고자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갖고 최선을 다해 엄마의 비위를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그 영향이 너무 커지면 딸아이의 삶도 결코 행복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삶은 사라지고 책임감만 남게 된다. 물론 지민이는 그런 엄마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

하지만, 이런 애증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평생 미워하다가 가끔은 이해하기도 하며 사는 모녀 관계도 많다.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관내분실된 이유는 아버지 현욱이 의도적으로 지운 것이다.

너무나 사실과 같은 아내의 모습을 만나고 유언이라는 말을 빌려 인덱스를 삭제해 버렸다. 그런데 현욱은 정말 아내를 생각해서 지운 것일까? 현욱은 솔직히 말하면 매우 나약한 남자이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못하는 남자이다. 인간관계가 어려우면 대화를 나누기보다 회피하는 유형이다. 그래서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남편이다. 자녀들에게도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처음부터 쉽게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고슴도치'와 같은 유형의 인간이다.

아니면 원래 남자는 이처럼 무뚝뚝하고 단순한 존재인가? 행복하지 않은 가정, 집에 들어가면 늘 긴장과 싸움이 유지되는 곳. 남편인 현욱에게 가정은 들어가기 무섭고 두려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는 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늙어서는 혼자서 외롭게 산다.

그런 무뚝뚝한 아버지 현욱은 냉혈한 존재같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지민이가 엄마의 유품을 찾으러 갔을 때 아버지 현욱은 엄마 은하의 유품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

당연히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 때 어떻게 위로하고 공감해야 하는지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다. 사실 나와 나의 아버지 세대는 그런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물론 변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폭삭 속았수다'에서 나오는 '양관식' 같은 아버지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존재이다. 그런 아버지 현실에서는 흔하지 않다.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아버지는 '학씨'와 같은 아버지일 것이다.


* 폭삭 속았수다

참고로 '폭삭 속았수다'라는 말은 '상당히 많이 고생했다'는 의미이다. '폭삭'은 지금도 의미가 남아 있는 부사로 '매우 많이', '완전히'의 의미로 지금도 많이 쓰인다. '폭삭 망했다'를 보면 된다.

'속았수다'는 '수고했수다'의 줄임말로 보면 된다. 수고(受苦)는 원래 고통을 받다는 의미의 한자어이다. 제주도 방언은 중세국어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옛날 조선시대에는 이런 말이 더 일상적으로 쓰였을 것이다. 요즘은 '고생했다. 힘들었지?' 이렇게 표현하지만 옛날에는 '폭삭 수고했다'는 표현이 더 일상적으로 쓰였을 것이다.


자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고 살지 못한 아버지들도 외롭고 불쌍할 수 있다.

그들에게도 '폭삭 속았수다.'라는 말을 전한다.


자기 인생조차 속고 산 것인지? 아니면 정말 수고한 것인지?


페미니즘 논란

나는 페미니즘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문화와 사회 구조는 여성에게 공평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단군신화와 서동요, 춘향전이나 신사임당과 같은 수많은 이야기와 문화 안에서 남성중심적인 지배체제는 견고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조금 더 개선할 여지가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한편 최근 젊은 남자들이 인식하는 역차별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이유가 자신이 그동안 누리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닌지 생각은 할 필요가 있다.


이 소설에서 페미니즘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것인가?

회사가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잘리는 건 왜 여자여야 하는가?

여자는 왜 자신의 능력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가족 안에서의 역할로 평가되어야 하는가?


'관내분실'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소설로, 페미니즘 주제를 다룬 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통념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다만 이 소설은 노골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지는 않는다. 가볍게 이런 문제가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도의 질문을 던지는 수준이다. 그리고 전적으로 '김은하'라는 지민의 엄마가 우울증에 걸린 이유가 남성중심적인 사회로 인한 것이라고만 일방적으로 말하지도 않는다.

그런 이유로 해서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논란의 중심에는 서지 않는다. 또한 그래서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냥 페미니즘적인 질문만 던진다. 그리고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넘긴다.


결국은 엄마가 되어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지민도 엄마 '김은하'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 아이를 임신하고, 회사에서는 아이를 길러야 한다는 이유로 중요한 업무에서는 배제된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회사에서 퇴사할지도 모른다. 그럼 엄마와 같은 길을 가게 될까? 이런 불안이 지민에게 생겼을 것이다. 본인도 산후우울증을 앓다가 병원에 갈 수도 있다. 불안은 인간을 가장 힘들게 하는 감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민은 엄마 '김은하'를 조금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상대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비슷한 처지에 있을 때 어느 정도 더 이해하고 공감을 하게 된다.


출판사에 근무하며 자기가 만든 책을 내는 게 소원이었던 엄마
전자책 시대로 넘어가면서 점차 쓸모가 없어지는 자신의 역할과 보람
그런 중에 아이를 갖게 되고, 아이를 사랑하기도 전에 회사에서 퇴출당한 경험
아이를 갖고서 다시는 사회에 나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불안감에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을 원했지만, 돌아오는 건 무관심과 원망
그렇게 엄마는 병원으로 가셨다.


지민이는 이제서야, 자기도 아이를 갖고, 회사를 다니면서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한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을 시작했다. 엄마를 다시 찾은 지민은, 엄마의 마인드와 접속하고 한마디를 남긴다.


'엄마를 이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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