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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울타리'

인문학의 쓸모 : 학교 일상의 기록 2

by 양심냉장고

학교의 아이들과 학부모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중간고사 시험이 끝났다. 고교학점제가 적용되고 내신 등급도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변화되는 첫해라서 아이들도 덩달아 많은 긴장을 한 시험이었다.

5등급제로 전환되면서 내신 부담이 줄어든 것 아니냐는 생각과는 다르게 현장에서 느끼는 압박감은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3년 동안 배우는 모든 과목에서 상대평가 내신이 나오니, 아이들이나 교사 모두 더 힘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9등급제 내신에서는 2,3학년으로 갈수록 진로과목이 늘고 절대평가 과목도 많았었다. 하지만 5등급제에서는 심지어 진로과목도 모두 5등급 상대평가다. 여기에 빨리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진로에 꼭 필요한 과목도 1학년이 가기 전에 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벌써부터 불만의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의대를 가기 위해서는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최상위권 학생들부터 초긴장 상태라는 것도 눈에 띈다. 시험 보기 전만 해도 친구들에게 너그럽고 웃음도 많았던 녀석들이 짜증도 많아지고 잠도 늘었다.

그놈의 의대가 뭔지, 의대 입학전형과 모집인원에 따라 대한민국 교육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의대를 향한 욕망은 나날이 증가하는데, 입학은 결코 쉽지 않으니 기상천외한 방법까지 동원된다. 특히 작년에 의대 모집인원이 2,000명이나 증가된다는 소식에는 그 욕망이 정점에 달했다. 사교육이 번창하고, 심지어 강남 대치동의 유명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4세 고시나 7세 고시 같은 말들이 나왔다. 그리고 이에 대해 분석하는 방송과 신문기사들도 많이 나온다.

최근 '추적 60분'에서는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와 같은 프로도 방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바가 있다. 신문기사나 방송의 핵심은 지나친 학벌주의가 낳은 폐해라는 말이나, 초등의대반과 연결지어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부모의 과도한 욕심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소아정신과 의사들이나 교육전문가들도 이러한 조기교육의 폐해에 대해 경고를 한다. 부모의 기대와 달리 두뇌발달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며, 정서발달에도 안 좋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학업성취도에도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의대나 명문대를 향한 사교육 열풍은 사그러들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오히려, 그래도 뭔가 합리적인 근거가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닌지, 나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더 불안하다. 역설적으로 사교육의 페해를 고발하는 방송이 나가면 나갈수록 학부모들은 더 불안해진다. 그게 마치 대세인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4세 교육은 아니어도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조금은 더 빨리 사교육을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을 느낀다. 이런 불안감이 자리잡은 상황에서는 어떤 전문가들의 경고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불안은 인간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스키너의 '상자'를 바라보는 마음

스키너의 행동주의 심리학은 인간 행동을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방식으로 다루게 함으로써 심리학의 과학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행동주의 심리학은 비인간적이며, 전체주의를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학교 교육의 현장에서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수업 시작 전에 '학습목표'를 제시하는 것도 스키너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스키너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고 싶어했다. 종소리만으로도 침을 흘리는 개를 만들 수 있다면, 설계된 행동에 따르는 보상으로 자신이 원하는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스키너는 이러한 이론에 근거하여 ‘에어 크립(Air Crib)’이라는 유아용 상자를 고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인 '데보라 스키너'를 이 상자에서 키웠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스키너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부모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고, 데보라가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괴담까지 퍼졌다. 그러나 실제로 데보라는 이 상자에서의 경험이 불쾌하거나 비인간적이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건강하게 성장해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날 4세 고시나 7세 고시를 준비하는 부모들의 마음도, 스키너가 '완벽한 육아 상자'를 만들었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요즘같이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라면 더 많은 준비를 시키는 것이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불안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대중들이 스키너를 오해한 것처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대치맘'들을 비난의 표적으로 삼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 비난의 이면에는 또 다른 욕망과 부러운 감정을 감춘 채 말이다.


솔직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문제만 해결된다면, 자녀를 위해 무슨 방법인들 하지 못하겠는가? 영어유치원이 아니라 아예 원어민 환경을 만들어 준다든가, 독서가 중요하다면, 최고의 독서전문가를 붙여 매일 낭독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흥미진진한 예체능 활동도 얼마든지 가르치고, 해외 여행으로 다양한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동시에 최고의 학습전문가를 붙여, 시기에 맞는 학습을 제공하고 완벽하게 피드백을 해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아이가 조금 힘들면 최고의 상담가나 정신과 전문의 상담도 가능하다. 이것이야말로 누구나 상상하는 '완벽한 육아 상자'가 아니겠는가?


문제는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은 대부분 삶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예외도 있지만 말이다. 그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은 예전부터 유별나다. 없는 집안 살림에도 불구하고 소를 팔고 땅을 팔아서라도 자식 교육에 진심이었다. 현재의 학부모들도 결코 옛날의 학부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특히 많아야 하나 둘 낳는 시대이니 자녀교육에 더욱 올인한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말'은 참 무서운 말이다.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옆집 엄마의 이야기는 과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질투가 나고, 방송에서 말하는 괴담같은 이야기는 욕하면서도 부러운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너도나도 무리를 해서라도 일단은 시작하고 보아야 하는 것이 사교육이다. 과도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 조금만 더 하면 그래도 끝난다는 희망 회로 안에서 너도 나도 달리는 것이다. '붉은 여왕의 역설'은 대한민국에서 엄연한 현실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 결과를 빨리 보려는 조바심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가졌던 순수한 마음은 사라지고, 전인적인 성장이라는 교육의 본질도 사라진다. 사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나오지도 않는다. 돈을 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결국은 당장 시험 점수가 잘 나오는 아이를 만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의 전도가 결국은 자신의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인간소외'의 문제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자극적인 언론이 유포하고 일반 대중들은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한다.


물론 대중들의 비난 이면에는,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시기심과 질투심도 상당히 많이 반영되어 있다. 솔직히 '완벽한 교육 상자'는 누구나 꿈꾸는 학부모들의 로망이 아닌가? 하지만 그러한 로망은 경제적인 이유이든 또는 다른 사람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철학의 부재이든, 대부분은 '완벽한 상자'가 아닌 '잔인한 감옥'을 만들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루소의 '울타리'

루소는 인간의 성선설을 주장한 철학자이다. 그는 '하나님은 만물을 선하게 창조하였으나 인간의 간섭으로 악하게 되었다.'고 『에밀』의 첫머리에서 말하고 있다. 잘못된 인간의 간섭이 선한 아이들을 망칠 수 있다며, 어머니에게는 '울타리'를 치라고 부탁하고 있고, 아버지에게는 먼저 '자연의 방법'을 배우라고 말한다.


상냥하고 열성적인 어머니여! 이 어린 나무를 보호하면 언젠가는 열매를 맺어 당신에게 보답할 것이니 당신 스스로 당신의 어린 나무에 울타리를 치시오.


비록 잠시 동안이라도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하지 않은 구속에서 벗어나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자. 그래서 얼마 동안이라도 노예상태에서 오는 악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자. 엄격한 교사들이나 자식의 노예가 되어 있는 아버지들이여! 그대들의 방법을 자랑하기 전에 먼저 자연의 방법을 배우라.


루소의 교육철학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작하려는 방법은 오히려 '완벽한 상'자가 아니라 '잔인한 감옥'을 만들 수 있음이 자명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방법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루소의 '울타리'는 무엇인가? 루소는 『에밀』에서 아이들을 최대한 그대로 놔두라고 말하지만, 함부로 방치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제한의 자유를 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일정한 한계를 정하면서도 최대한 아이들의 자율과 역량을 존중한다. 아이는 하나의 인격체이다. 아이들도 스스로 자기의 인생이 행복하기를 원한다고 믿는 것이다.


오만에 가득 찬 그의 머리 위에 자연이 부과한 고된 멍에가 있어, 모든 존재가 자연의 멍에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닫게 하라. 일단 거절한 것은 절대로 번복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떼를 쓰더라도 마음을 움직여서는 안된다. 들어줄 수 있는 일은 기꺼이 들어주고 거절해야 할 때는 반드시 유감을 표시하는 것이 좋다.


루소 당시에도 지나친 교육열과 엄격한 통제는 존재했다. 하지만 루소는 그러한 방법이 자율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을 만들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에밀'과 같은 자율적인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타율적인 욕망과 소유욕으로 인한 과도한 개입에서 멀어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에 필요한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루소의 말은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완벽한 교육상자'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은 부모의 교만일 수 있다. 부모가 더 많이 안다는 착각 속에 '이게 다 너를 위한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것일 수 있다.


또한, 중앙대 독문과 김누리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 체제가 전체주의 파시스트를 양산한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점수로 우열을 나누는 지나친 경쟁이 지속된다면 앞으로도, 군대를 동원하고 계엄령을 외치며 자신이 생각하는 천국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나치와 같은 인간들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은 한문으로 하면 ‘敎育’이다. 教' 자는 본래 '爻', '子', '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爻'는 '교차하다'는 의미를, '子'는 '아이'를, '攴'는 '손에 막대기를 들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반면 영어로는 'edcate'인데 라틴어 ‘ēducere’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어원을 분석하면 "e-"(밖으로) + "ducere"(이끌다, 끌어내다)는 뜻으로 한 인간이 가진 잠재력을 밖으로 이끌어 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곧 교육이란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내재된 능력을 개발하고 깨닫게 하는 과정이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이외에도 교육에 대한 철학과 가치는 다양하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다 교육의 전문가이다. 따라서 여기서도 무엇이 옳다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 역시 완벽한 상자가 존재한다면 스키너와 같이, 나의 자녀를 '상자' 안에 집어 넣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상자'들 대부분은 '잔인한 감옥'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옥 안에서 자라나는 많은 엘리트들이 만들 미래 사회가, 더 많은 파시스트를 만들 수 있다는 학자들의 경고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 아닌가?


최소한 자신만의 교육관은 갖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남들 하니 나도 한다는 마음으로는 결코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없다. 타율적인 삶은 끊임없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자녀를 위해서 '상자'가 좋을지 '울타리'가 좋을지부터 분명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울타리'를 더 선호해 왔다. 물론 재벌처럼 완벽한 상자를 만들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어쨋든 나의 경험으로, 불안으로부터 놓이는 방법은 나와 대상의 실체를 아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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