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근로의 기록 5화
여름 내내 낫을 휘둘러 정글 같던 단풍잎돼지풀을 베어냈다. 땀방울이 채 마르기도 전, 이번에는 하천의 영양분을 독식한 환삼덩굴이 바닥에 견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환삼덩굴 짙은 초록밭이 끝도 없이 길게 이어졌다. 가시에 긇혀가며 끈질긴 환삼덩굴을 겨우 해치우자, 기다렸다는 듯 가을의 불청객 가시박이 덤벼들었다.
가시박은 나무들을 거대한 우산처럼 덮어씌워 햇빛을 차단하고 끝내 고사시킨다. 땅속에서 무려 7년이나 숨죽이며 생명을 유지하는 별사탕 모양의 씨앗은, 제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듯 굵고 억센 가시를 세워 고무로 코팅이 된 두꺼운 작업 장갑마저 사정없이 뚫고 들어왔다.
하필 가을에 꽃이 피어 벌들까지 기승을 부렸다. 한 손에는 낫을, 한 손에는 에프킬라를 들고 벌떼를 쫓아가며 작업을 이어가야 했던 험난한 현장. 하지만 이토록 고된 사투 속에서도 누구 하나 입 밖으로 불평을 뱉지 않았다. 따가운 가시에 찔리고 윙윙대는 벌떼에 쫓기면서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이지 너무 성실해서 지난한 어려움에 단련된 사람들 같았다. 잡초의 억센 생명력보다 더 강인한 것은, 어쩌면 묵묵히 자기 몫의 땀을 흘리는 인간의 선한 의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그분들의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빼주며 미안한 마음을 달랬다.
이렇게 힘들게 하는 일이지만 '공공 근로 중에 제일 인기 있는 작업이 하천 일'이라며 점검 차 나온 일자리 정책과 과장님이 격려의 말을 하였다. 하천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재미가 있다고 근로자들 사이에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새참으로 커피와 떡을 나누고 일이 끝나면 술 한잔 기울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어느새 선택 1순위 공근이 되어 있었다. 과장님은 oo시의 공공일자리 정원이 300명인데 한 개 동에서 지원자가 320명 나왔노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굿은 일이지만 이 일이라도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처지가 참으로 안타까웠다. 공공 근로는 일자리정책이지만 복지 정책이기도 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 (홀로 거주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말 붙일 사람 하나 없이 쓸쓸하고 우울한데 일하러 나오면 먹거리도 나누고 친구도 사귀고 적당한 신체 활동에 용돈까지 벌어가니 삶에 활력을 주는 일석 삼조의 일이었다. 공공 일자리에 예산을 더 배정하여 일자리 수를 늘리면 적은 돈으로 여러 사람의 삶을 구제할 수 있는 훌륭한 복지 사업인 것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하천 작업이 끝났을 때 '우리 수고 많았으니 서로 축하하자! 며' 부침개 파티를 제안했다.
다들 환호하며 조마다 부침개 반죽과 프라이팬, 버너 등을 준비해 왔다. 어느 조는 전복까지 넣어온 팀도 있었다. 주말 농장을 빌려서 지글지글 부침개를 부치며 하하 호호 껄껄껄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그동안의 고생이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공공 근로에서 부침개 파티는 규정 상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내가 책임을 지겠다며 무모하게 일을 벌였다. 어르신들이 하천에 내려가 고생하신 걸 생각하면 이 정도의 보상은 당연하지 않나 싶었다.
끝없이 이어지던 환삼덩굴의 초록밭이 흙바닥으로 맨살을 드러냈다. 하천의 맨땅을 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정글 같던 생소하고 낯선 하천의 여름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이제는 작은 풀꽃들이 피어나는 우리 하천의 천변 풍경을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십시일반. 그 많던 일도 함께 손을 보태니 못할 일이 없었다.
농사를 짓는 조 씨 할아버지는 코펠과 버너를 자전거에 싣고 와서 자신이 수확한 고구마를 새참으로 삶아주셨다. 일이 끝나면 조용히 살림살이(?)를 싣고 천변길을 달려서 퇴근하신다. 할아버지의 굽은 등에서 어려운 중에도 남에게 베풀려고 하는 민초들의 착한 성정을 읽는다. 우리 민족의 저력이 저 착하고 성실한 굽은 등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다정해진 하천변을 걸어서 집으로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