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만에 아내와 텃밭에 다녀왔다. 지난 늦가을에 겨울초, 시금치, 봄동, 갓 등을 심어두었다. 겨울 월동 준비로 비닐을 덮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또한 비나 눈도 오지 않아 모두 말라 죽지는 않았는을까 걱정도 했다. 가보니 겨울이라 그런지 가뭄에도 말라죽지는 않았지만 거의 자라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겨울초와 봄동, 갓 중 큰 것만 캤다. 대부분 키와 잎은 작지만 두껍고 단단했다. 이 중 일부는 겨울 동안 마르고, 얼어 죽겠지만 나머지는 봄이 되면 실하게 자랄 것이라고 우리는 위안하면 돌아왔다.
지난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3일 동안 물리 특강을 했다. 특강이라 내년 수능에 물리학을 시험보겠다는 학생들이 신청하겠거니 하며 내심 기대했다. 따라서 수업 준비도 단단히 했다. 수업 방법도 바꿔 학생이 따라하면 공부 방법도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내가 준비한 수업 방법을 적용하면서 개선하여 3월에는 물리학을 선택하는 모든 학생에게 적용하겠다는 당찬 포부도 가졌다. 그런데 웬걸 전혀 아니었다. 물리를 잘 못하는 학생이 반수 이상이었다. 나머지도 썩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내가 계획한 수업 방법은 질문 먼저 하고, 질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내용을 찾아보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수업은 교사가 먼저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개념, 이론, 공식 등을 설명했다. 그 후 학생들에게 그 단원에서 배운 내용을 집중적으로 익힐 수 있는 문제를 제시하는 방법이었다면 이번에는 거꾸로 간다. 수업 내용도 한 단원마다 집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대표적인 문제 한두 문제를 해결하면서 전 분야를 섭렵하는 형태이다. 집중적으로 학습할 때 실력이 향상되는 듯 느껴지지만 착각이다. 이런 방법은 전통적 방법으로 단기기억 혹은 작업기억에 있는 지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뿐 장기기억에 저장되기도 어렵고, 시간이 흘러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지식을 회상 해내지 못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고안한 수업 방법이다.
특강에 참여한 학생은 3학년으로 진급한다. 당연히 2학년 때 물리1을 수강했다. 특강에서 내가 준비한 수업 방법을 제시했을 때 수업 방법은 생경할지 몰라도 내용은 익숙할 것이라 생각했다. 첫날 첫 문제를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이론과 공식을 적어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연히 교사가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새다. 학교나 인강에서 강의했던 형태처럼.
문제해결 방법은 어느 과목에서나 문제가 요구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이다. 둘째,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주어진 정보와 알아내야 하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다. 셋째, 알아내야 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이론, 개념, 공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넷째,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기본적인 문제해결 방법이다. 문제를 한 문제 제시하고, 하나씩 학생들에게 요구하면서 수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100분씩 3일 동안 수업했다. 조금씩 문제해결 순서를 체득해 가는 분위기이다. 이론과 공식을 문제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고민하는 자세이다.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이론을 몇 번씩 읽는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사나 강사의 강의를 여러 번 듣는다고 실력이 쑥쑥 자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문제해결 능력은 스스로 기르는 것이다. 단지 방법이 문제다. 학습 방법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학습하니 인강 회사만 좋아질 뿐이다.
텃밭에 심어 둔 채소는 겨울에는 더욱 자라기 힘들다. 물을 줄 수도 없다. 뿌리채 얼기 때문이다. 엄동설한에 조금씩 자랄 수 있도록 비닐로 덮어 주면서 스스로 자생력을 기르게 할 수밖에 없다. 이들 학생도 마찬가지다. 아직 실력이 자라지 못한 이들에게 어렵고 힘든 문제를 제시하면서 풀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공부방법을 가르쳐주고 습관화부터 해야 한다. 이들은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벼리는 방법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특강을 몇 번 한다고 완전히 체득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중 몇몇은 스스로 자생력을 기르지 않을까. 봄이 되면 겨울을 난 채소가 쑥쑥 자라듯 3월 개학이 되면 이들도 실력이 붙어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