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에 꽃이 주렁주렁 열렸다. 가만히 보니 같은 꽃이 하나도 없다. 똑같아 보이는데 꽃잎이 작은 것, 꽃잎에서 반사되는 빛이 다른 것 등 서로 달랐다. 강당에 모이는 학부모 손에 매달린 꽃바구니에는 겨울임에도 생생하게 핀 꽃이 가득했다.
오늘 졸업식을 했다. 대강당에 모인 3학년 학생은 어제 아침 등교 때와 달라 보였다. 하루 사이에 훌쩍 커 어른스러워진 모습이었다. 오늘 모임은 평소 열렸던 전체 모임과 사뭇 달랐다. 그들은 식장에서 흐트러짐 없이 앉아 있었다. 스탠드에서 내려보고 있는 부모니을 찾는 눈길도 없었다. 부모님 곁을 떠나 이제 성인으로 자신의 삶을 찾아가라는 교장 선생님, 학부모 회장님 등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한 말씀이라도 놓치면 다시 들을 기회가 없다는 듯 그들은 내내 엄숙했다.
졸업은 끝이자 시작인 문이다. 고등학교라는 문을 닫음과 동시에 새로운 장이 펼쳐진다. 대학으로 진학하든 취업을 하든 이제 새로운 무대에 서게 된다. 어떤 곳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갈망했던 자유를 맘껏 누릴 것 같지만 새롭고 더 견고한 족쇄가 기다리기도 한다. 그것을 피하려고 애쓰면 더욱 조여들기도 한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피할 길이 없다. 필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그곳에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순응이 아니라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세계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희망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자유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잘못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힘든 삶을 살게 되는 것 또한 이에 해당한다. 스스로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한발 떼어놓을 때마다 자신을 생각하게 되어 억압속에서도 자유를 얻게 된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질문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왜 그것을 원하는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가?’ 등의 질문이다. 이들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학업 성취와 상관없다. 친구따라 강남가지 않기 위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일 뿐이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한 삶이 불행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자신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시인 이도윤은 바다는 잠들지 않기 위해 제 머리를 바위에 부딪힌다고, 그래서 뜨거운 태양을 낳을 수 있다고 노래했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사람이 빛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정립해야 한다. 무엇을 못하느냐보다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붙잡고 그 길로 가야 한다. 빛나는 성취는 한길로 갈 때만 이룰 수 있다는 말처럼 자신이 발견한 길로 갈 때만 빛나는 태양을 낳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생김새도 다르지만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등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새롭게 내디딜 길도 같은 길인 듯 보이지만 모두 다르다. 앞서간 사람이 다듬어 놓은 길인 듯 보이지만 뒤에서 가는 사람이 걷는 그 길은 또 다른 길이 된다. 학부모들이 들고 온 바구니 속 꽃이 무도 다르듯 졸업생도 모두 다르다. 그들이 피우는 꽃도 모두 다를 것이다. 그 꽃은 제 속에 있는 씨앗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 졸업생 모두 새롭게 내딛는 길에 놓인 모순된 자유 속에서 자신만의 꽃을 피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