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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줄 세우는 사회

by 최정곤

책을 읽어도, 신문 칼럼을 읽어도 중・고등학교 교육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한결같다. 현재처럼 정답찾기 교육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수학과 어느 교수는 학생에게 비슷한 문제를 여러 번 계속 풀게 하니 학생이 수학을 싫어하게 된다는 얘기도 했다. 그들은 올바른 평가의 예로 프랑스 철학 시험인 바칼로레아와 필란드 교육 평가 방법인 과제와 프로젝트 등과 같은 학생이 생각을 나타낼 수 있는 평가를 제시했다. 평가가 교육과정과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지난주 금요일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에 교무실 소회의 테이블이 시끄러웠다. 그날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남아있다가 목격한 사건이다. 한 남자 학부모가 젊은 여선생과 얘기 중이었다. 무심결에 스치는 말에서 시험과 관련된 얘기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관심을 가지고 잠시 들어보니 시험문제 채점과 관련된 얘기였다. 교사가 채점한 것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학생이 채점에 대해 제기한 이의를 공동 출제한 교사들과 상의하여 다시 채점하기로 하고, 학생에게도 전달했다고 그 선생이 얘기해도 학부모는 계속 항의했다. 그는 자신의 부인과 학생이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도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서술형 문제 점수 1점이 문제였다. 학생을 가르친 지 약 36년,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시험문제는 동과 선생님이 공동으로 출제하고 검토한다. 그럼에도 가끔 오류가 생긴다. 단어 해석,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엉뚱한 예 등 다양한 이유 때문이다. 이럴 때 학교에서는 공정하게 처리하려고 애쓴다. 서술형 문제 채점 과정에서 학생이 이의를 제기하면 그 문제를 다시 검토하고 채점한다. 그런 과정에서 문제 오류 혹은 정답 오류, 채점 오류 등을 바로잡는다. 대부분 학생에게 유리하게 판정한다. 서술형 채점 1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학부모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한다. 1점이 대학 이름을 결정하는 세태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입시를 위한 발판일 뿐이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를 믿지 않는다. 점수로 줄세우기를 하는 교실에서 인간적인 대화는 이미 강을 건넜다. 공부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학생 대부분은 ‘대학 진학’, ‘돈을 잘 벌기 위해서’ 등으로 대답한다. 그에게 공부는 세상을 알고, 어제와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어쩌면 평생 공부해야 하는 인간의 존재 양식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성적으로 매겨진 숫자로 인식됨이 자연스럽지는 않은지 의심스럽다.

학생들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런 생각을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자기 생각처럼 여겨질 뿐이다. 그들은 어디서 들었을까. 1차는 부모님, 2차는 사회이다. 공부를 잘해야 이름있는 대학을 가고, 소위 좋은 직장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지 않았을까.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들었던 그 얘기를 대물림해서 또 들었음이 틀림없다. 가끔 그들은 세대를 이어 복제되는 과정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식정보화 시대라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고등학교 교육은 그것에서 소외되었다. 그들은 약 45년 전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교육 방법을 답습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기 전에 대학 선발방법을 바꿔야 한다. 몇 년 전 모 과학고에서 있었던 일이다. 3학년 졸업 예정자 중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한 학생이 있었다. 대한민국 인재상은 다양한 영역에서 창의성을 발휘하여 좋은 결과를 얻은 학생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그 학생이 대학을 어디에 갔냐고? 재수했다. 그 학생을 받아주는 대학은 없었다. 성적이 문제가 되었다. 그 학생 얘기를 할 때마다 성적 외에는 모든 것이 겉치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이 성적 경쟁에 내몰리지 않을 수 있을까.

고등학교 교육을 걱정하는 전문가, 서술형 점수 1점에 잠 못 이뤘다는 학부모와 학생. 그들을 탓할 생각이 없다. 단지 점수 1점이 갖는 내신성적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는 일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말은 혹시 구호일 뿐은 아닐까? 그 속에서 살아가는 대다수가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를 줄 세우고 숫자를 매기고 있지는 않는지 되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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