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조금씩 깊어가는 요즘, 풍경은 다채롭다. 길거리 은행 나뭇잎은 제각기 다른 속도로 물들어 간다. 어떤 나무는 아직도 푸른데, 그 옆에 있는 나무는 노랗게 물들었다. 벚나무도 다양하다. 어떤 녀석은 벌써 잎을 거의 따 떨어뜨리고 가지에 하늘만 담고 있는 반면 성글지만 예쁜 색으로 단장한 것도 있다. 모두 다르다. 뭉뚱거려 말을 할 수 없다. 모두 자기 모양을 갖추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봄에는 꼭같이 푸르게 잎을 내고, 꽃을 피웠다. 어느 나무가 조금 일찍 꽃망울을 터트리는 경우는 있어도 도긴개긴이었다. 비슷하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달라졌다. 제각기 몸부림치는 정도가 달라서다. 땅속에서 물을 빨아들이고, 햇볕을 받아 영양분을 축적하는 정도가 다르다. 모두가 같은 조건인 듯 보이지만 하나같이 다르다. 토양 상태가 다르고, 물을 머금은 상태가 다르다. 뿌리가 물을 빨아들이는 능력도 제각각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꽃 피우고 열매 맺고, 자기 색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나무가 얼마나 실하게 자랐는지 짐작할 수 있다.
며칠 전 친구 몇 명이 모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반가웠다. 모두 학교에서 교사 혹을 교장으로 재직하였다가 올해 정년 퇴임을 했거나 할 예정인 친구들이다. 얼굴과 머리에는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거울 속에서 보던 내 얼굴이 친구들 얼굴에 비쳤다. “자네는 시간이 비켜갔네”라고 인사를 건네지만 인사치레라는 점을 모두 알고 있다. 그 중에는 암투병 중이거나 심장이 좋지 않은 상태인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풍화되어 부서져 가는 토담 같은 느낌이었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평생 교직에 있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재직시절 얘기가 나왔다. 교사라는 직업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친구와 괜찮았다는 친구들로 나뉘었다. 교사에 회의감을 나타내는 친구는 학생과 관계에 진절머리를 냈다. 수업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로 생각했다. 그와 달리 긍정적인 친구는 학생과 수업하면서 있었던 좋은 기억을 얘기했다. 그는 기회가 있으면 학생을 가르치고 싶다고도 했다. 어느 쪽이든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약 35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모습이다. 그들 속에 들어있는 기억은 한 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만들 수 없다. 마음에 들어온 작은 티끌을 삭혀 내야 거름이 된다. 요즘 젊은 선생님들을 보면 학생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학생을 불러서 얘기할 때는 준비해 놓은 과자도 주면서 얘기한다. 라포를 형성하려고 무척 애쓰고 있었다. 그들을 보면 내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처음 교사를 시작할 때와 지금은 학생과 교사 사이 문화가 달라졌다. 특히 2000년대 들면서 급격하게 변했다. 그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먼 옛날 모습을 고수한다면 결국 부딪힐 수밖에 없다. 완충제가 없는 충돌은 약한 쪽을 부순다.
인텔 CEO 앤디 그로브는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라고 했다. 변화는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얘기다. 자동차의 타이어는 땅의 모든 상황에 적당히 변화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상황은 다르다. 그것에 맞추지 않으면 꼰대가 된다. 예전에는 맞은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틀린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학생은 매년 달라진다. 어제의 교육 방법과 태도와 신념으로 학생을 대할 수 없다. 변화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두꺼워지고, 검은색마저 띠는 잎처럼 자기방어를 위한 껍질만 두꺼워진다. 변화가 필수인 이유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자기를 다듬는 과정이다. 교학상장이라는 말처럼 가르치면서 배운다. 학생이 성장하는 만큼 교사도 성장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오프라 윈프리 말처럼 변해야 한다. 변화하는 문화에 적응하고, 자기를 바꾸려고 애썼던 이들은 이 가을 예쁘게 자기 색으로 물들고 있는 나뭇잎과 같다. 미완성인 삶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