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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이 갖는 무거움

by 최정곤

“엄마야!, 으악!” 부엌 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아내와 제수씨는 부엌에서 엄마 댁 싱크대 청소를 하는 중이었다. 그 소리에 아우와 나는 바깥에 있는 세탁기가 비뚤게 놓인 탓에 소리가 심해 그것을 바로 잡는 일을 하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엄마는 웃고 계셨고, 아내와 제수씨는 놀람과 장난이 섞인 묘한 웃음을 지으며 부엌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싱크대 아래쪽 문은 열려있고, 바퀴벌레 몇 마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급히 바퀴벌레 퇴치 약을 쳤다. 아내는 싱크대 아래와 서랍 등에 확인하고 퇴치해달라고 했다. 서랍을 열 때 마다 벌레는 나타났고, 어떤 녀석은 날아 나왔다. 그것을 볼 때마다 아내와 제수씨는 소리를 쳤고, 엄마는 그 모습이 재밌는지 오랜만에 크게 웃으셨다. “하룻밤에 고손자까지 낳는 놈”이라는 말씀을 몇 번이나 덧붙이시면서. 덕분에 싱크대 서랍, 아래쪽 등을 말끔히 청소했다. 약을 맞은 벌레가 비틀거리며 기어 나올 때마다 비명은 계속되었지만.

바퀴벌레 몇 마리 때문에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유쾌했다. 엄마는 하셨던 말씀을 계속 반복하셨지만 며느리들이 놀라는 모습에 오랜만에 시원하게 웃으셨다. 옛날 당신이 젊으셨을 때는 바퀴벌레가 나오면 손으로 잡으셨다는 말씀도 몇 번이나 반복하셨다. 아내와 제수씨는 그런 엄마에게 “어머님! 정말 용감하시네요”라는 말을 했다. 엄마가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나도 즐거웠다.

내가 삼사십 때는 그만한 일에는 즐겁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작은 일은 기억에도 없다. 신기루 같은 일에 매달려 그것만 생각했다. 계획하고, 얻기를 갈망했지만 여전히 멀리 있는 욕망을 좇기 바빴다. 운이 좋아 계획한 일이 이루어질 때만 즐거워했다. 며칠만 지나면 적응이 되어 그 일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고, 그것으로 인해 얻은 즐거움도 사라졌다. 추억만 남을 뿐이었다. 또 다른 욕망을 좇았다. 다람쥐 챗바퀴 돌 듯 가까이는 보지 않고 멀리만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은 삶에서 지워졌다. 일상은 말로만 존재했다.

이순이 넘은 지금! 세월 탓일까? 이제는 일상이 뭔지 조금은 안다. 그것은 큰 일 혹은 이벤트로 채워지지 않고, 별것 아닌 일로 채워진다는 점을. 어떤 순간이 재밌는지도 안다. 며느리가 보내주는 손주 사진과 동영상을 볼 때,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그날 겪었던 일을 얘기 나누는 동안, 식사 후 동네 한 바퀴 걷는 시간, 아내와 텃밭에 가서 고추, 상추 등을 조금씩 수확하면서 서로 얼굴을 보고 웃을 때. 모두 이전에는 그냥 사라졌던 일이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한 사람의 삶과 역사를 연결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 제목이지만, 그것을 떠나 한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삶은 빛나는 일, 자랑스러운 일로 삶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런 일은 어쩌다 생길 뿐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위대한 일은 작은 일들이 모여 이루어진다고 했듯이 하루라는 덩어리는 마음에 깃들지도 않는 일로 채워진다.

중용에서도 작은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중용 23장에 있는 말이다. 정조 대왕도 이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작은 것에 정성을 다하면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고,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작고 사소한 것이 전부다. 행복은 그것에서 기쁨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바퀴벌레 몇 마리로 소동을 일으켰지만 엄마는 오랜만에 크게 웃으셨다. 경증 치매를 앓고 계시는 엄마, 조금씩 저물어가는 엄마의 시각을 보면서 엄마는 무엇을 기억하고 계시는지 궁금할 때도 있다. 엄마 삶에 채워진 수많은 작은 일이 이런 순간에 가끔 드러난다. 작지만 엄마는 기억하시고 때로는 웃으신다. 평소 무표정하시던 엄마 얼굴에 웃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사소한 일의 무거움에 대해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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