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 함께 국내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익숙한 지형과 문화, 계절마다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다. 사람마다 여행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나는 주로 변화하는 것을 보고 느끼려고 한다. 이번에는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을 목적지로 하고 그 주변을 돌아봤다. 그곳은 몇 년 전에도 다녀왔다. 그때는 여름이라 여름꽃이 한창이었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씨 덕분에 사람에 밀려다니지 않아서 좋았지만 꽃이 변화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비에 젖은 채 고개를 떨군 꽃 사이에 아내를 세워두고 셔터를 눌렀을 뿐이다. 그때 아쉬움 때문일까. 이번 추석 연휴에 길을 그쪽으로 잡았다.
전날 수목원 근처에서 숙박을 하고 아침 일찍 그곳에 들어갔다. 우리보다 일찍 도착해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침 고요’라는 말처럼 조용한 길을 아내와 걸었다. 입구에서 받은 안내장을 들고 차례로 둘러보았다. 아내는 좋아하는 구절초가 핀 곳을 찾아 그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전날까지 비가 왔던 터라 그것은 줄기는 비록 가지런하지 못했지만 꽃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가을에 피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아내는 그곳에서 내내 예쁜 자세를 잡았다. 수목원은 고요했지만 아내와 내 마음은 부산했다.
비록 전날 내린 비에 젖어 조금은 어깨가 처진 듯 보였지만 여전히 빛나는 국화전시장, 아프리카봉선화가 무리를 이룬 곳을 보면서 가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아내는 곳곳에 보이는 이미 저버린 수국을 보면서 아쉬워했다. 꽃은 비록 져버렸지만 꼿꼿한 그 자세를 나는 한참 쳐다봤다. 아직 여름 꼬리가 길게 늘어져 있는 때에 비록 수국꽃은 없지만 꽃이 있었던 그 자리는 여전히 가지런하고, 단아했다. 변화 속에서 변화되지 않아야 하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추석 연휴 저녁에 KBS에서 감동이 느껴지는 음악 프로그램을 우연히 시청했다. 조용필 콘서트였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들었던 노래였지만 여전히 감동이었다. 75세라는 나이가 무색해 보이는 그는 여전히 단아했다. 젊을 때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세월이 만든 기품이 느껴졌다. 겉으로 보이는 그 모습도 좋았지만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은 무대에서 보이는 변함없는 열정과 예의였다. 세월이 모든 것을 변화시켜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는 보여줬다.
그런 모습은 살아온 자세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젊을 때 삶은 화려하다. 제철을 만난 꽃과 같다. 어디를 봐도 예쁘다. 언제봐도 아름답다. 그런 시간이 지나면서 익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쭉정이가 될지 알곡이 될지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난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상관없다. 그가 살아낸 시간과 경험, 삶을 대하는 태도 등이 조화를 이루면서 그려낸 그림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은 볼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은 보고 느낀다. 그것이 삶의 뒷모습이다.
미국의 미술가이자 영화제작자인 앤디 워홀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일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당신이라고 했다. 무엇이든 바꾸려면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시간이 바꿔 주는 것은 낡아지는 것이다. 시간 가는 대로 살다 보면 작품이 아니라 부스러진 모습이 된다. 초라하게 흩어진 모습만이 남게 된다. 작품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간이 만드는 변화를 거슬러 다듬으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외부에 드러나는 것이 이럴진대 그 삶의 내면은 어떨까?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을 것이다.
살아가는 것은 우연을 바탕으로 변화가 그려내는 산수화이다. 한 사람의 모습은 시간이 만드는 변화에 거슬러 변화하려는 태도와 자세가 함께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그릴지 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여름, 화려한 색으로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시간이 변해도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수국. 가왕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75세의 나이에도 변함없이 열정이 가득한 조용필. 그들을 보면서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또다시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