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에서 시작된 기록

by 오나

나는 여행지에서 가장 사적인 책을 만났다. 바로 방명록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여행광이다. 물론 나보다 더 여행을 많이 다니는 분들도 많겠지만, '직장인'의 틀 안에서 최대한 갈 수 있을만큼 여행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여행지마다 나를 붙잡은 건 언제나 방명록이었다.


방명록에는 단순히 "OO이 왔다감." 같은 단순한 생존 신고만 있는게 아니었다. 그 속에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털어놓은 인생의 조각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런 방명록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고 어느 책보다 더 진하게 읽었다.


방명록을 쓴 사람들은 모두 여행을 온 사람들인데 방명록 속 이야기는 대부분 여행 그 자체보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누군지 모를 익명의 독자에게 자신의 궤적을 드러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하지 못했을 속 깊은 이야기들. 나는 그 기록들을 누군가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기분으로 읽곤 했다. 나랑 관련도 없는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가 왜 나에게 이렇게 울림이 왔던 것일까. 그것은 결국 과거, 현재, 미래의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나는 늘 읽기만 했다. 흔한 방명록에조차 쓰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괜히 잘 쓰는 '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려운 어휘, 다양한 미사여구, 수미상관 등 국어시간에 배웠던 온갖 내용을 떠올리며 마음을 접곤 했다. 하지만 방명록 글들 가운데 내 마음에 울림을 준 것은 잘 쓴 글이 아니라 다듬어지지 않은 진솔함이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언어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기로 했다. 내 감정이나 생각이 모호할 때 글로 적어보면 정리되는 순간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던 사유가 글로 새겨질 때, 나는 나를 더 선명하게 마주한다.


방명록 속 사람들이 여행을 빌려 삶을 고백했듯, 우리도 결국 삶이라는 가장 긴 여행의 방명록을 쓰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여행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일상을 이야기하고, 일상을 말하면서도 결국 삶 전체를 여행처럼 사색하려는 나의 시도 말이다.


나도 누군가의 좋은 방명록이 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이 기록들이 당신의 방명록 한 페이지, 아니 한 줄이라도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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