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였다. 사이가 특별히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헤어질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불같이 좋아한 만큼 불같이 싸웠다. 옳은 만남이 아니라고 수없이 되뇌었지만, 쉽게 끊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끝은, 불시에 찾아왔다.
헤어지고 나서 곧장 최악의 루트를 밟았다. 직접 집으로 찾아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상대가 얼마나 싫고 질렸을까 싶다. 그때 나는 내 감정이 세상의 전부였고, 상대에게 피해준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만큼 어렸다.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 결과는 대차게 거절당한 것이었고, 나는 받아들였다. 아니 사실 받아들이지 못했다. 온갖 재회 관련 내용을 찾아보며, 한 달만 버티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허망한 희망을 붙들었다. 그렇게 나는 단순히 하루를 버티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즈음, 아는 언니와 경주 여행을 가게 되었다. 경주는 내가 유난히 좋아하던 도시였다. 마침 연휴가 있던 터라 2박 3일 경주 여행을 떠났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풍경을 보고, 유적을 거닐면 마음이 고요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일상 속에서는 힘들어도 어떻게든 버텼는데, 경주에 오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 함께 왔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모든 기억과 감정이 생생하게 나를 휘어 감았다. 꾹꾹 눌러 담아둔 마음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왜 도저히 참아지지가 않을까. 감정은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와 눈물로 이어졌고, 망할 내 손가락은 핸드폰을 들어 카톡을 보내고 있었다. 카톡을 수십 번 열었다 닫았다. 돌아온 건, 침묵뿐이었다.
나는 경주의 길 위에서 깨달았다. 이별에 의연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 의연하지 못하다는 것을. 정말 슬펐던 건 그 사람을 잃은 게 아니었다. 이제는 안부조차 묻지 못하는, 남보다 먼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뒤로도 경주를 방문한 적이 있다. 확실히 내 감정에 따라 같은 장소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경주는 내게 아픈 기억이다. 남녀간의 이별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이별이 내겐 유난히 힘들었다. 다시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달라졌다. 그만큼 나는 관계에 진심이었고 만남들을 너무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런 나를 보듬기로 했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 재고 따지며 숨기고 싶지 않다. 오히려 더욱더 솔직해지고 싶다.
아직도 그 봄날의 경주 풍경이 선명하다. 따뜻한 공기, 푸르던 대왕릉, 언제 봐도 반가운 첨성대, 그리고 옛것과 새것이 나란히 서 있던 황리단길. 경주의 오래된 유적들처럼, 이런 내 마음을 오래도록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다시 서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