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오타가 선물한 자유

by 오나

제주에서 만난 건 바다가 아니라 오래된 타자기였다. 나는 계획을 세워 여행하는 편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제주에선 늘 호텔 대신 공유 숙소에 묵는데, 이날도 그랬다. 이러한 공유 숙소에는 사장님께서 본인의 정보와 취향을 동원해 맛집이나 갈 곳 리스트를 적어두시는 아주 고마운 분들이 있다.이 이야기도 그 리스트 덕분에 시작됐다.


리스트 안에는 이색 체험 타자기라고 적혀 있었다. 말 그대로 타자기를 체험하는 이색 공간이 숙소 근처에 있어서 예약을 하고 방문하게 되었다. 사장님께서 가장 먼저 타자기 쓰는 법을 알려주셨다. 타자기는 지금의 키보드와는 달라서 수정 버튼, 즉 뒤로 가기 버튼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수정은 가능하지만 글자가 아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타자 쓰는 방식도 지금과는 조금 달라 새로운 방법으로 타자를 써야 했다. 그렇게 설명을 들은 후 타자기 앞에 앉았다. 종이 재질도 직접 고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문장을 작성해서 원하는 마스킹 테이프와 실링으로 꾸밀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책의 구절과 가사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한창 연습 과정을 거친 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자판을 누를 때마다 금속이 맞부딪히는 딱딱 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타자기의 둔탁한 소리는 내가 쓴 문장이 세상에 각인되는 순간 같았다. 그렇게 잘 쓰는가 싶더니, 역시나 오타가 나왔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망했다!"를 크게 외쳐버렸다. 그때 사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 체험하러 오시는 분들은 꼭 글자 쓰다가 틀리면 망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게 왜 망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것 또한 실수고, 과정이고 멋이지 않을까요?"


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 나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나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고 틀리는 걸 싫어한다. 뒤로가기 버튼이 없으니 틀렸다는 생각에 괴로워져 그리 말한 것이다. 나는 데이먼스이어라는 가수의 조제라는 곡의 가사를 쓰고 있었는데 조제를 조시로 적었다. 그 뒤로 나는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날의 말을 기억하고 싶어서였고 오타는 웃음을 불러오게 했다.


여행조차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나보다. 틀린 순간이 결국 나를 풍요롭게 했다. 타자기가 나에게 알려준 건 타자를 치는 방식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다. 오타는 결국 나를 자유롭게 했고, 그 틀린 순간이 곧 멋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나는 삶 속에서도 오타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에 한 발짝 나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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