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혁신가
아무리 가면을 쓰고 숨기려 해도, 그 사람의 노랫소리를 조금만 들으면, ‘아! 이 사람이군!’하며 알게 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제게는 조용필, 전인권, 김건모 같은 가수가 떠오릅니다. 이런 가수들은 다른 사람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자신만이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목소리의 톤, 독특한 발음의 습관, 즐겨 사용하는 보컬의 테크닉 등은 어느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그들만의 지문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cHYv-p9szA
재즈연주를 들을 때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재즈는 장르의 특성상 이미 널리 알려진 곡을 여러 다른 연주자가 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같은 곡도 여러 연주자의 다른 버전이 존재합니다. 가끔은 카페 같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다가, 어떤 곡을 들으며 ‘참 아름다운 연주인데, 왠지 모르게 익숙하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게 누구의 연주인지 스타일만으로 추측해서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연주를 들어도 그 강렬한 인상과 존재감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밖에 없는 개성이 강한 피아니스트가 있는데, 그가 바로 오늘 역대 최고의 재즈피아니스트 8위로 소개하려는 맥코이 타이너(McCoy Tyner)입니다. 엄청난 테크닉으로 고음에서 저음까지 피아노 음역 전반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야수파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채감과 개성적인 화성의 진행... 이런 것들이 바로 타이너를 다른 연주자와 구별하게 만드는 특징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ukuQPUKfyU
피아노는 다른 악기들에 비해 톤이 깨끗하고 풍성한 화음이 연주가 가능한 악기입니다. 그런 악기의 특성을 사용해 많은 재즈피아노 연주자들은 다양하면서도 로맨틱한 화성들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또한 트럼펫, 색소폰 같은 멜로디 악기들을 서포트하며 앙상블을 하나로 묶어내는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쉬운 말로 표현한다면 부드럽고 예쁘게 연주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맥코이 타이너의 연주는 그런 전통적인 스타일과는 다르게 마치 불꽃이 타오르듯 폭발하는 듯한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언제나 끓어오르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aPVbKglRu8&t=1s
맥코이 타이너를 이야기할 때, 그를 온 세상에 알려지게 해 준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콜트레인이라는 거대한 인물을 어떻게 한마디로 소개할 수 있을까요? 재즈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주자 중 한 사람? 재즈에서 조성음악의 한계를 넘어서 난해한 현대음악으로 나아가 미래의 음악을 제시한 선지자? 그 어떠한 표현도 그에게는 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포츠 팬들은 종종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에서 역대 최고의 팀이 어느 팀이었는지 재미 삼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야구에서는 베이브 루스가 이끌었던 뉴욕 양키스, 농구에서는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주로 언급됩니다. 재즈에서도 이런 이야기기 가끔 나오는데, 재즈역사에는 수많은 앙상블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꼭 많은 사람들이 가장 혁신적이었다고 말하는 밴드 중 하나가 바로 존 콜트레인과 맥코이 타이너가 함께 했던, 존 콜트레인 쿼텟(John Coltrane Quartet)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3juO5oS2gg&t=1s
이 쿼텟에서 타이너는 콜트레인의 현대적인 재즈어법을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의 악기인 피아노에서 그것을 구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타이너의 연주가 다른 피아니스트들과는 구별되게 하는 주요한 특징이 되었습니다.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4도를 중심으로 하는 화성의 연주입니다. 전통적으로 화성은 3도 간격으로 쌓아 올려 만들어집니다. 재즈에서도 이런 방식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타이너는 화음을 4도로 쌓아서 하는 연주를 본격적으로 사용했고 이것은 그의 연주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었습니다. 편안한 협화음인 3도의 화성을 듣다가 처음 4도 위주의 화음을 듣게 되면, 재즈를 처음 듣는 분들에게는 조금은 낯설고 갈라지는 소리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런 음악을 듣고 그 사운드에 익숙해지면 낯설었던 그 소리가 아주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woth-Fc0xM&t=1s
타이너의 연주의 특징 중 또 다른 하나는 ‘펜타토닉 음계(Penatatonic Scale)’의 사용입니다. 펜타토닉 음계란,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의 구전민요에서 발견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따라 부르기 쉬운 음계를 말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학교 음악시간에 ‘오음계’라는 용어로 배웠었고, 한국의 전통민요 ‘아리랑’도 펜타토닉 음계로 이루어진 노래입니다.
맥코이 타이너는 이런 간단한 펜타토닉 많이 사용했지만, 그의 연주는 마치 처음 들어본 것처럼 새로웠습니다. 그것은 그가 펜타토닉 음계를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이전에는 적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화음이나 다른 조성에 사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멜로디를 만들어 낼 때도, 듣기 편한 전통적인 2도의 순차진행 외에 4도를 비롯한 다양한 도약진행을 사용해서 현대적인 멜로디의 문법을 만들어 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3VczRfu9Kg&t=6s
그의 만들어 낸 이러한 새로운 스타일의 연주는 후대의 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패션으로 비유한다면 지금까지 익숙한 대로 나름 멋을 내면서 입고 다녔는데, 갑자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힙(Hip)한 새로운 스타일이 멋지게 등장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새 스타일은 순식간에 재즈팬들을 사로잡았고, 이전의 스타일은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새로운 시대의 젊은 재즈피아니스트들은 그의 현대적이고 강렬한 문법을 따라 했고,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를 자신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지난 글에 최고의 재즈피아니스트 9위로 소개한 칙 코리아가 그중 대표적인 연주자입니다.
저는 비교적 전통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러한 전통들도 바로 늘 새로운 혁신가들에 의해 재창조되고 끊임없이 변화되어 나갈 때 생명력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씩 기존의 전통적인 예쁜 연주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고, 무언가 새롭고 강렬한 재즈를 듣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저는 주저 없이 맥코이 타이너의 폭발적인 연주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