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엔터테이너, 최고의 피아니스트
순수한 예술작품인가, 연예산업의 상품인가? 포스트모던이라는 말도 한참 지난 이 시대에는 너무나 진부한 질문이지만, 한때는 꽤 논쟁이 되던 문제였습니다. 한 사람의 작품이나 그 사람 자체를 대해 - 주로 평론가들이 - 여러 이유를 들며 자신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 말이지요. 하긴 봉준호 감독님 ‘기생충’이라는 영화에 대해서도 작게나마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지금도 완전히 끝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이에 대한 논쟁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런 논쟁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보통 예술이냐 상품이냐의 논쟁이 되는 사람들은 그 두 가지 영역에서 모두 너무나 뛰어난 성취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보통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논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둘 중 한쪽에서라도 성공을 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논쟁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그 아티스트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팻츠 왈러(Fats Waller)가 바로 그런 음악인입니다. 피아니스트이며 오르가니스트, 히트곡 작곡가, 가수이면서 코미디언으로, 모든 면에서 빼어났던 그는 당대 최고의 음악인이면서 연예인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인 “Ain’t Misbehavin’”의 영상을 보신다면 그의 인기비결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열악한 화질의 흑백영상을 통해서도 달콤한 목소리, 눈썹을 씰룩거리며 웃음을 짓는 여유와, 화려한 피아노 연주까지… 그가 얼마나 빼어난 엔터테이너의 기질을 가진 음악인이었는지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의 공연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도 다른 곳에 시선을 둘 수는 없을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SNPpssruFY
왈러는 목사님이었던 아버지와 음악인이었던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흑인 음악인들의 전형적인 출생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음악교육이 체계적으로 자리잡지 못한 시기였기에, 훌륭한 가수들은 목사님의 자녀 혹은 교회성가대 출신들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통해 음악교육을 받았고 교회에서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주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재능이 뛰어났기에, 그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바로 뉴욕 할렘의 링컨극장에서 연주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워낙 뛰어났던 그의 연주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인해, 그의 인기는 점점 더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에서 가장 사랑받는 연주자로 떠올랐습니다. 무대를 장악하는 압도적인 그의 연주를 보고 한 평론가는 팻츠 왈러를 “검은 호로비츠(The Black Horowitz)”라고 불렀습니다. 당대 클래식 음악계의 최고의 스타 피아노 연주자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와 비교한 것이니 그의 연주의 완벽함과 그의 스타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zm8v9reDo
그의 인기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시카고를 방문해서 연주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시카고의 갱들이 나타나 그를 납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며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갱들이 그를 데려간 곳은, 당시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갱의 두목이었던 “알 카포네(Al Capone)”의 생일파티였습니다. 갱들은 두목의 생일파티에 서프라이즈 게스트가 필요했는데,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왈러가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왈러는 자기를 강제로 데려와서 연주를 시키는 그 상황이 황당하면서도, 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자 기뻐서 사흘동안 벌어진 알 카포네의 생일파티에서 즐겁게 연주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워낙 스스로 작곡한 히트곡이 많은 그였기에 왈러는 작곡가로 유명했지만, 사실 왈러는 초기 재즈시절 피아노 연주스타일을 발전시킨 뛰어난 연주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초기 재즈의 피아노 스타일인 “스트라이드 피아노(Stride Piano)” 연주의 거장이었는데, 스트라이드 피아노란 저음부와 화음부를 왼손으로 바쁘게 오가며 넓은 간격으로 연주하는 스타일을 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6w2F__-1Bw&t=2s
스트라이드 피아노의 아이디어는 음악적으로는 간단한 것이지만, 넓은 음정의 화음이 많기 때문에 연주하기 위해서는 매우 손이 커야 하고, 손의 포지션 이동을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왈러의 연주를 듣고 받아 적어서 출판한 악보를 보면 연주하기가 아주 까다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스트라이드 피아노에는 굉장히 빠른 템포의 곡이 많기 때문에, 실제로 연주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왈러는 뮤지컬 장르에서 최초의 기록을 가진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브로드웨이 무대를 위해 만들어진 뮤지컬 작품을 작곡한 최초의 흑인 음악인이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려면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조금은 이해해야 합니다. 뮤지컬은 노래, 각본, 연기, 의상, 무대장치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예술의 장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비가 많이 들고 당연히 큰 규모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투자자나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작곡가와 작품을 선정하는데 아주 까다롭게 보게 됩니다. 당시의 흑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한다면 이런 투자를 얻어내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사실 인기스타였던 왈러조차도 처음에는 작곡가가 아니라, 뮤지컬 작품에 등장할 하나의 코믹한 인물로 캐스팅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왈러의 작곡능력을 인정한 제작자에 의해, 나중에 작곡가로도 발탁된 것이었지요.
이렇게 여러 면에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었고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누구에게나 안타까운 일은 찾아오는 것일까요. 인생의 절정기를 달리던 1943년, 그는 기차를 타고 여행하던 도중, 갑작스레 걸린 폐렴으로 캔자스시티 근교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서른아홉의 나이였습니다. 너무나 뛰어난 음악인이었기에 지금도 그의 짧은 인생은 아쉽다 못해 허망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그의 연주스타일은 카운트 베이시(Count Baise), 에롤 가너(Erroll Garner),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등 수많은 후대 연주자들을 계승되고 발전되었습니다. 오늘은 한 사람 안에 담기에는 넘치는 재능을 타고난 왈러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들에게 주어진 짧은 인생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