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사기사건

「추안급국안」의 기록을 중심으로

by 서운인혜

성경에 따르면 시대가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입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의 죄성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볼 수 있는 죄들은 이미 과거에도 있었으며, 그 과거의 과거에도 존재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이 시대를 뛰어넘은 진리의 말씀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죄의 문제를 다루는 법학 역시 과거의 시대나 현재의 시대나 동일한 부분이 많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범죄 중 하나가 이른바 '보이스피싱'이라 불리는 사기 범죄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시대 때도 이와 유사한 범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 형사 사건 기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꼽히는 것이 「추안급국안」이다. ‘추안’은 죄인을 심문하고 사건을 규명하는 절차를, ‘급국’은 그 결과를 임금에게 보고하여 판결을 확정하는 과정을 뜻한다.이 책은 의금부가 임금의 명으로 심리한 중대한 형사사건의 전모를 담고 있으며, 단순한 재판 기록을 넘어 피의자와 피해자의 진술, 증거 문서, 관리들의 논의와 법리 판단, 임금의 최종 승인까지 일련의 과정을 온전히 보여준다. 오늘날로 치면 판례집과 수사 기록, 재판 조서 등이 합쳐진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조선의 범죄 양상과 법 적용, 사회적 신뢰 질서의 유지와 붕괴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추안급국안」의 기록 가운데에는 오늘날의 보이스피싱 범죄와 닮아 있는 사건이 실려 있다. 조선 후기 한양에서 한 남자가 지방 아전의 심부름꾼을 자칭하며 상인들에게 접근하였다. 그는 수령의 도장이 찍힌 것처럼 꾸민 문서를 내밀고, 관청이 곡식을 사들이기 위해 급히 은전을 빌려야 하니 곧 곡식으로 갚겠다고 말했다. 당시 관 문서는 권위와 신뢰의 상징이었으므로 상인들은 이를 진짜로 믿고 의심 없이 은전을 내주었다. 그러나 약속된 기한이 지나도록 변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인들이 추후에 수령에게 확인해 보니 그러한 문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피해를 입은 상인들은 이 사건을 포도청에 고발하였고, 피의자는 곧 붙잡혔다. 피의자의 거처에서는 위조 문서가 여러 장 발견되었으며, 조사 과정에서 그는 이미 지방의 여러 고을에서도 같은 수법으로 금전을 빼앗은 전력이 드러났다.

피의자는 은전을 갚을 뜻은 있었으나 사정이 어려워 그러지 못했을 뿐이라 항변했으나, 관리들은 애초부터 갚을 마음이 없었고 관청의 권위를 사칭하여 상습적으로 재물을 편취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사건은 빚의 미이행이 아니라, 치밀하게 꾸며진 기망 행위로 인한 사기로 확정되었다. 당시 조선의 형사 법제는 명나라의 법전을 이어받아 편찬한 「경국대전」에 근거하였는데, 그 가운데 형률편에는 “무릇 속임수로 재물을 취한 자는 장 100대와 도형 3년에 처한다”라는 조항이 있었다. 사기 범죄는 절도와 함께 재산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로 다뤄졌으며, 특히 공문서를 위조해 국가 권위를 가장한 경우는 더욱 무겁게 처벌되었다. 조선의 법제는 사문서와 공문서를 구분하여, 공문서 위조는 곧 임금의 명을 가탁한 행위로 보아 사회 질서를 흔드는 중죄로 여겼던 것이다. 판결문에는 “임금의 명을 가장하여 백성의 재물을 속여 취하였으니, 이는 도적보다도 더욱 무도한 행위다”라는 구절이 남아 있다. 재판부는 그의 상습성을 인정하여 곤장과 함께 유배형을 내렸다. 피해 금액의 많고 적음은 물론,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죄질이 형량을 가중한 것이다.

이 사건의 법리적 구조를 오늘날의 사기죄에 비추어 보면 네 가지 단계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먼저 피의자가 위조 문서를 내밀며 자신을 아전의 심부름꾼으로 속인 것이 기망 행위이고, 이에 상인들이 이를 진실로 믿은 것이 착오이다. 이어 그 착오에 따라 상인들이 은전을 건넨 것이 처분 행위이며, 마지막으로 피의자가 그 은전을 차지해 달아난 것이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다. 이러한 연쇄는 오늘날 형법 제347조 제1항이 정한 사기죄의 구성 요건과 정확히 부합한다. 동 조항은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현대의 보이스피싱 범죄 역시 이 규정으로 처벌되는데, 범인들이 검찰·경찰·금융기관을 사칭해 피해자로 하여금 권위 있는 명령으로 믿게 만들고, 피해자는 그 착오에 빠져 스스로 금전을 송금한다. 이처럼 조선 후기의 위임장 위조 사기사건과 현대의 보이스피싱은 시대적 배경은 달라도, 속임·착오·처분·이익으로 이어지는 동일한 법리 구조를 공유한다.

이 사건은 조선 사회에도 오늘날과 같은 사기 범죄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국가는 이를 단순한 재산 범죄가 아니라 사회 질서를 해치는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였고, 법전을 통해 명확한 처벌 기준을 두었다. 판결 과정 또한 진술 조사, 문서 검토, 법리 판단, 국왕 재가로 이어지는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사법 체계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추안급국안」에 남은 이 기록은 조선이 이미 사기 사건을 심각하게 다루었으며, 현대와 닮은 법적 구조 속에서 범죄를 판단했음을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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